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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 수의사 Mar 08. 2021

산속 동물원의 물속 동물

물범 초롱이 이야기

동물원에는 매점이 하나 있다. 매점 사장님은 물범들의 하루를 어쩌면 제일 잘 아시는 분이다. 


매점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물범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일 관람객이 뜸한 시간에 물범의 일과를 관찰하는 것이 사장님의 큰 낙이었다. 낚시찌처럼 물밖에 머리만 내놓고 까만 눈동자로 응시하는 새끼 물범 초롱이는 사장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물범을 관리하는 사육사분이 계시지만 관찰하는 절대 시간이 많은 사장님에게 초롱이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초롱이는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초롱이를 닮은 매점의 물범인형도 많이 팔려 나갔다.


초롱이를 포함한 물범들의 영어 이름은 하버 씰[harbor seal]이다. 지구 북반구 바다에 폭넓게 살고 있는 물범 종이다. 하버 씰은 해양 포유류답게 바다의 깊은 곳을 누비며 빠른 물고기를 더 빠른 수영으로 잡아먹는다. 20~30분 간의 잠수는 거뜬하다. 한참을 물속에서 있기 위해 심장 박동수는 느려지며 혈중 산소를 최소한으로 소비한다. 생물은 모두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언젠가부터 초롱이가 눈을 잘 뜨지 못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물범들이 살고 있는 풀장의 수질이 나빠진 것이 이유였다. 물범은 물속에서 배변활동을 한다. 그런데 4마리가 한 곳에 같이 살다 보니 비좁은 수조의 물은 아무리 자주 갈아줘도 금방 더러워졌다. 더욱이 몇 해 전부터 지하수가 잘 나오지 않아 수돗물로 대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땅속의 물이 부족해 갈수기가 긴 해는 수돗물 값만 몇백만 원에 달했다.  


바다에 살아야 할 물범이 지하수와 수돗물에서 살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물론 물고기가 아닌 물 밖에서 숨 쉬는 포유류이기에 민물에서도 살 수는 있지만, 스트레스 등에 의해 면역력이 낮아지면 만성 안질환과 피부병에 걸리기 쉽다. 물고기를 먹이로 줄 때도 kg당 3g의 소금을 넣어줘야 한다. 냉동 상태로 들여오는 물고기가 해동되면 염분이 빠져나가는데, 물범은 생리적으로 나트륨 요구량이 육지 포유류보다 높기에 보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훌쩍 커버린 초롱이의 인기는 예전에 비해 시들해져 갔다. 초롱이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자극이 되는 햇볕을 가리는 그늘막을 쳐주고 메인 풀장 옆 수조에 초롱이를 격리시켰다. 한 달 동안 세 가지나 되는 안약을 매일 넣기 위해 초롱이와 사육사들은 잦은 실랑이를 했다. 물범 사육사들의 인내로 초롱이의 눈은 호전을 보였다.


최근 나이 든 물범들이 마지막 여생을 바닷물에서 살게 해주고 싶어 받아줄 곳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제주 성산포의 대형 수족관에서 받아줄 의사를 보여 현재 추진 중이다. 마음 같아선 서해 바다로 보내주고 싶었으나 유전자를 확인해 보니, 우리 물범은 백령도 물범과는 다른 종이 었다. 울산 고래연구소의 물범 전문가는 나이 많은 물범들은 야생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물범이 제주도로 가고 나면, 동물원에 살던 암컷 수달과 더불어 자연에서 구조되었으나 자연방사가 어려운 수달들을 데려올 계획이다. 얼마 전 동물원 근처에서 야생 수달도 발견되었으니 동물원은 나름 수달이 살만한 환경온도를 제공해 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암컷 수달의 집은 워낙 좁아 사회적 거리(?)를 원하는 수줍은 암컷 수달을 직원들조차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물범에게는 좁게 느껴졌을 수조지만, 덩치가 보다 작은 수달들에겐 충분할 것이다. 이 공간이 안정감을 느낄 거리를 제공해 앞으로 수달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른 이점도 있다. 수달은 자신의 영역표시를 위해서 물 밖 바위에 분변을 모아놓는 행동을 하는데, 물범이 있을 때 빈번하게 갈아주었던 수돗물을 절약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새끼 물범이었던 초롱이는 이제 4살이다. 초롱이는 2년 전 광주동물원의 새로 지은 해양 포유류 사로 옮겨갔다. 작년에 다시 만난 초롱이는 건강해 보였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평일 한산해진 매점에서 소일하시던 사장님에게 잘 지내는 초롱이 얘기를 꺼내자 당장이라도 광주에 한번 다녀오실 요량이다. 머지않아 물범들이 다 떠나고 나면 서운한 마음이야 남겠지만 다시 새로운 수달의 안부를 전해주실 것으로 안다. 물범들이 제주로 떠나는 날을 월요일은 피하고 싶다. 물범들도 매점 사장님이 쉬는 월요일에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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