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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Aug 16. 2023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철인왕후'를 보고

꾸역꾸역 방학 숙제인 논문 한 편을 끝내고 잠시 취미생활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철인왕후’를 보았다. 소리 내서 웃게 만들어주는 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시로 나타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도 하였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왕인 철종이 아내인 왕비를 대하는 태도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마음먹으면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부들도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 남자인 사람(그것도 아주 외향적인)이 중전의 영혼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이상하겠는가? 그 이상한 언행을 철종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중전은 조선 시대에는 없는 외래어들을 계속 사용한다. 그래서 철종은 그 말들을 이해하려고 ‘중전 사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기록한다. (예를들면 노터치와 올인 같은 말들이다.) 그는 모르는 말이 나오면 꼭 물어본다. 아주 학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중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말뿐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중전의 행동은 반드시 물어본다. 중전이 대답하기 곤란해서 도망을 가면 쫓아 가서라도 물어본다. 더욱이 철종의 도덕적인 기준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일 때는 더더욱 그렇게 한다. 중전을 오해하고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전이 나름대로 설명해도 이해가 되지 않은 행동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해는 안되지만 중전은 이런 사람인 것을 받아들여야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결혼을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선택지를 살펴볼 수 없다. 그저 우연에 의한 몇몇 선택지에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 내가 우리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 등등 얼마나 우연이 많은가? 그런데 대학입학을 위한 공부는 열심히 했을지 모르지만 배우자를 선택하는 공부는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최상의 선택지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리스크조차 존재하는 것이 결혼이다.


다시 말해 결혼도 우연에 의해 던져진 내 환경의 일부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맞춤형 인생이란 없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잘살아보려고 노력하듯이 결혼생활도 노력을 해야 잘 굴러갈 수 있다. 철종이 중전을 대하는 태도만 갖춘다면 어떤 부부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있으면 좋고 사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인간애와 공동체 의식만 있어도 되는데 사실 이것들을 갖추는게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철종처럼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저 받아들인다면 될 것이다. 그리고 철종처럼 이해하기 위해 묻고 또 묻고, 대화를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할 것이다. 중전의 몸에서 빨리 빠져나가려는 데만 온 신경을 쓰는 중전의 영혼이 잘한 행동은 물으면 답해주고 철종이 쫓아오면 대답을 해주었다. 더 좋은 것은 솔직하게 답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해를 하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말이 있다. 왕에게 반말하고 태도는 거칠고 왕에게 전혀 관심을 안 보이는(드라마 초반에는 그랬다) 왕비지만, 또한 정략결혼의 대상이고 그가 세력을 꺾고 싶은 가문 출신이라서 경계해야 할 왕비지만, 왕은 왕비의 영혼이 지닌 쿨한 성격, 정의감 등을 이해하며 그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인 왕비의 영혼도 왕의 이러한 태도에 왕에게 호의를 느끼며 왕의 지지자가 된다.


'철인왕후'의 왕과 왕비의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서 부부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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