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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Oct 14. 2023

플랜 B도 괜찮았어

생각의 유연성

얼마 안 있으면 중학교 이후에는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선다. 지역 축제의 일환인 연극무대다. 2인극이라서 대사 암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현업과 병행해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늘 공연이 끝날 때까지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일이 있다. 산행이다.      


하지만 주말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서 조금은 높이가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는 대신에 해발 180m 정도 되는 동네 산을 찾았다.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오늘은 정상 방향으로 가다가 작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샛길 주변에는 누리장나무들이 많았는데 여름내 야산을 향기로 가득 채웠을 꽃들이 이제는 까만 씨를 맺고 있었다.


샛길이라서 나무들이 내 가까이 있어서인지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걷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뜻밖의 기쁨에 정상은 한 번만 갔다가 정상을 가운데 두고 여기저기 난 샛길을 돌아다녔다. 군데군데 보이는 큰 바위, 작은 바위들이 산다운 운치를 만들어 주었다. 아직 단풍 시기는 아니지만 성급하게 물든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걷는 이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더 좋은 것은 샛길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어팟에서 새어 나오는 연극대사들을 중얼중얼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잘됐다 싶어 한 시간 이상 걸었다. 이런 상황을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하지 않을까? 사실 내겐 일석이조도 아니고 일석삼조였다. 자연을 누리고 운동을 하고 연극대사도 암기하고 말이다.      


주말에 주 1회 산행이 플랜 A라면 오늘 동네 산을 걸은 것은 플랜 B였다. 그러나 제법 산행의 기분을 낼 수 있고 할 일까지 할 수 있는 코스를 발견했으니 이걸 생각의 유연성이 준 대가라고 해석하면 과장일까? 오늘의 플랜 B는 공연이 있기 전까지 한두 번 플랜 A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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