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입니다만. ‘안동슈퍼’>
요즘 아니다. 요즘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상상이 있다. 상상만 시작하면 현실에 도통 잘 안돌아온다.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내가 차리고 싶은 가게 그리고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상상이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가게 딸린 집’. 내가 살아왔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나의 기억 대부분은 가게 딸린 집에서 살았다. 안동 슈퍼 처갓0 양념통닭 카나리0치킨 세 번의 가게가 기억난다. 특히 안동슈퍼를 하던 그 시절은 내가 많이 어렸던 걸까 국민학교 3학년 때 통닭집으로 바뀌었던 게 맞을 거다. (그땐 국민학교!) 아무튼 그 시절 이야기해주는 가족들은 지금 별로 없어서 인지 나는 늘 그 시절들을 사진을 보고 상상하거나 기억들을 짜 맞추어 보기도 한다.
유독스레 요즘 가게 딸린 집을 고민하게 된 배경은 전셋집 주인의 매매를 강요해서도 아니다.
가계부에 빵구가 많아 돈을 벌고 싶어서도 아니다.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기대도 아니다.
다 아니다. 아니다.
여기서 아니다는 강한 부정일 뿐 아마,
내 심정의 밑바탕에는 다 사실의 이유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면서 시작된 상상인데, 그 상상 속에서 나는 가끔 이혼 한 엄마를 떠올린다. 부모님이 고생하며 애쓰며 살았던 신혼 초기 시절 , 첫 부모 된 시절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애절한 감정으로 엄마를 아버지를 상상해보게 된다. 그래서 나의 안동 슈퍼 제안서는 그 슬픔이 조금 담길 지도 모르겠다.
내가 눈여겨 둔 가게 딸린 건물은 경주의 시골에 있다. 그 집은 지금 비워둔 가게인데 주인이 살고는 있지 않고 마당의 텃밭만 이용하는 듯하다. (이것도 추론이다. 주로 오전에 대문이 열리고 늘 닫혀 있는데 슬쩍 보았던 적이 있다.) 단층짜리 유리 샷시에 작은 벽 한쪽에는 창문 공간도 있다. 색이 바랜 하얀색 페인트에 이 집의 대문은 빨간색인데 유독 새 거처럼 깨끗하다. 간판으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마음에 든다. 그냥 집안으로 쓸 공간이 추위와 더위에 강할까 고민스럽다.
내가 만들 안동 슈퍼는 이름일 뿐 난 카페 겸 잡화점을 하고 싶다. 잡화점의 속성은 슈퍼이고 카페의 속성은 사람들의 공간이다.
결국 ‘안동슈퍼 커피점’ 이걸 난 하고 싶다.
좀 널찍한 평상을 꼭 둬야 한다.
우리 집 가게의 역사에서 평상은 늘 빠진 적이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늘 놀다 앉다 갔고 여름날 저녁에 술 마시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아버지가 빠진 적이 없다.) 그 평상이 난 좋았는데 나의 가게 앞에 그걸 두고 동네 어른들의 택배 보관소가 되거나 믹스커피 한잔의 공간이 되거나 길 건너 고등학생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테리어는 최소한을 해야겠지만 (예산을 생각해서) 예전 집의 외벽에 있던 갈색 벽돌 아, 이것도 타일이었겠다. 갈색 벽돌들도 좀 붙이고, 2층으로 올라가던 계단 타일들 아주 작은 푸른 빛깔 잘 떨어지던 타일들을 인테리어로 쓰고 싶다. 선반들은 철물점의 나무 선반을 사용해야지 한쪽 외벽의 작은 창은 사진관처럼 액자 선반으로 꾸며야겠다. 담배를 팔 계획은 없지만 담배 글씨를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 사진 속 엄마가 앉아있던 폭신한 쿠션 나무의자 그 옆의 작은 유리 냉장고 그리고 연탄난로도 두어야겠다. 테이블은 2개들 못 둘 정도로 작지만 밟고 올라가는 작은 마루를 없애진 말아야겠다. 바로 앞 방을 좌식형 카페로 공간을 빼도 나쁘진 않겠다. 우리 집 안방이 늘 가게 손님들이 놀러 와서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주변에 인기 많은 복고풍 카페들도 많이 생각이 난다. 콘셉트가 많이 겹쳐서 내가 정말 차리고 나면 지인들이 걱정에 걱정을 할 거 같다. 그땐 이렇게 핑계를 대야지 …
“여기 내 집이야 우리 애들이랑 짝지랑 사는 곳”
탈탈 털어서도 대문 앞마당을 살 돈도 없지만 대충 어째 어째 대출 조금 받고 그렇게 해서 손 볼 곳 많은 저 집에서 살면서 나의 상상도 현실이 됨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의 젊었던 부모도 부모가 처음 되던 그 시절을 내가 ‘지금’으로 잡아두고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이들의 어린 시절과 부모들의 이야기와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들을 더 재미나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돈은 조금 벌여졌으면 좋겠다.
대출은 갚아야 하니 애들은 키워야 하니
이렇게 우선 나의 제안서 1탄을 마무리한다.
제안서란 검토할 수 록 깊어지는 맛이 있어야 하니 다시 쓸 때에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지 써봐야겠다. 아, 재밌구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