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닉스도 떼지 못한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죠?
‘다들 7세 고시 준비하고 계신가요?
스피킹, 롸이팅, 어휘, 리딩 아이한테 이렇게까지 시켜야 하나 싶고
욕심은 나지만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실제 한 영어유치원 관련 맘카페에서 본 어느 엄마의 고민이다.
‘7세 고시’란 유명 영어, 수학 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조기 사교육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영어 유치원 입학을 위해 ‘4세 고시’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한글도 떼기 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또 다른 학원에서 과외를 받아야 한다니.
흡사 '우린 경력직만 뽑아요'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태어나 보니 절벽이었던 ‘흰뺨기러기’ 처럼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태어난 걸 한탄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초등학생을 키우는 가정이 있다.
영어유치원은 커녕, 영어 학원조차 보내지 않은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결국 학교 선생님의 긴급 호출을 받았다.
바로 우리 집 이야기다.
그날 밤,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눈 우리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다.
“그래도 알파벳은 외우지? 노래해 봐. 자 A,B,C,D~”
“A,B, C, D, E, F, G, H, I, J~”
“그렇지, 알파벳만 알면 금방 배우지. “
“M, P Q I , 어쩌고 저쩌고~”
“음?? 케이는 어디 갔어? 설마?!”
“…”
아이는 머릿 속도 검게 검게 색을 칠했던 듯하다.
녀석은 이미 알고 있던 알파벳도 일부 까먹은 상태였다.
아직 A부터 J까지는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뒤죽박죽 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4살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했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당장 석 달 뒤 해외 주재원으로 떠나야 했기에 현실은 일단 암울했다.
국제학교 입학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으로 이뤄진다.
초등학교 1학년은 거의 영어를 못해도 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베트남 학기 운영체제에 따르면 3학년 2학기에 해당했다.
3학년부터는 고학년을 앞두고 있기에
시험 난이도 역시 제법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는 당장 ‘국제학교 고시’를 앞두고
사교육 무식자도 알고 있는 교육의 성지, 대치동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영어 학원 문턱을 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 줄 누가 알았으랴.
방문 예약을 위해 영어학원에 전화를 할 때마다 놀랍게도 똑같은 질문이 되돌아왔다.
“우리 친구가 파닉스(Phonics)는 뗐을까요?”
마치 ‘수학의 정석’ 참고서처럼 영어 입문 대표 명사로 통용되지만
사실 파닉스(Phonics)는 읽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문자마다 어떤 발음이 나는지 패턴을 익혀
설령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발음을 조합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알파벳도 헷갈리는 판에 파닉스가 웬말인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잠깐의 침묵으로 수화기 너머 학원 관계자들의 입이 떡 벌어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일곱 번째쯤 전화했던 학원은 알파벳도 헷갈려한다는 말에 거의 아동학대나 방임 사건을 접한 듯한 반응이었다.
모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파닉스를 배우려고 연락을 한 건데 파닉스를 떼고 와야 한단다.
결국 대치동을 포기하고 우리는 목동으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학원은 방문을 거절했다.
파닉스를 떼지 않은 아홉 살 아이는 갈 곳이 없었다.
단 한 곳에서만 국제학교 입학시험과 비슷한
레벨테스트라도 해보자고 했다.
그 결과, 아홉 살 집착남의 점수는 ‘7점’.
“설마 10점이 만점인가요?”
“그러면 좋겠는데 100점 만점입니다, 어머니.”
학원 관계자도 내심 놀란 눈치였지만
입학시험을 지도해 줄 선생님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당장 학원비를 입금하고 우리 가족은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홀가분한 마음에 그날밤 고기도 구웠다.
그런데,
다음 날, 월급날도 아닌데 은행 임금 내역 알림이 울렸다.
돈을 보낸 곳은 바로 학원이었다.
학원은 시간표를 보내주는 대신 환불을 해줬다.
도무지 선생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파닉스, 파닉스, 파닉스!!!!
진정 우리 아이는 학원조차 다닐 수 없다는 말인가?
다시 혼돈의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