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닉스도 떼지 못한 아이의 생존전략

소신이랄 것도 없는, 믿음의 배신

by 밤이 키운 아이

이쯤 되니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어디서부터 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은 것?

영어 학원이라도 보내지 않은 것?

아무것도 모른 채 사립학교에 지원한 것?

초등학교 입학 후 학원에 다니지 않은 것?


물론 우리 아이도 학원을 다녔다.

다만 피아노, 수영, 미술 등 예체능에 한정했다.

아직은 조금 더 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공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커왔듯이.

그러나 이러한 우리 부부의 선택이 결국 갈 곳 없는 아이로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학교 수업만 잘 들어도 따라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물론 학교를 원망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 간 수준 편차가 너무 심한 교실에서 선생님들도 어쩌란 말인가.

소신이랄 것도 없는, 그저 아이는 아이답게 키우자는 작은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5~7살 때 실컷 놀았다고 과연 우리 아이는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침반 -설운도-


운도 오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중략)

아무리 찾아봐도 그 사람은 간 곳이 없네.

(중략) 영등포로 갈까요.

을지로 길모퉁이에 나는 서있네.‘


그 무렵 나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문득문득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당시 아이를 데리고 갈 곳 없는 허한 마음이 노래로 표출된 것이리라.

결국 우리는 종로로 향했다.

먼저 해외 주재원 발령을 받았던 남편 회사 선배의 현실적인 조언 덕분이었다.

영어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던 본인의 아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때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길을 찾았다는 말씀.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은 교육열이 남다른 한 소규모 어학원이었다.

원장님과 우리는 입학을 위한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석 달 안에 국제학교 입학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읽기와 쓰기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로 화상 면접시험만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것.

아니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아이가 프리토킹이라고요?

마치 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란다.

미국계 국제학교의 경우, 면접에서 보이는 아이의 태도와 잠재력을 높이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별히 국제학교 졸업 후, 교사로 근무했던 강사를 찾아 일주일에 세 번씩 수업을 하기로 했다.

준비 막바지에는 원어민을 봐도 얼어붙지 않도록 제시 선생님과 모의 면접도 연습했다.

일단 학교는 보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가슴 따뜻한 원장님의 위로에 또 주책맞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하여 아홉 살 집착남의 특별 입시 작전이 펼쳐졌다.

작전명,


‘I can do it!’


해병대 캠프처럼 아이는 정말로 그 넘에 파닉스 대신 ‘I can do it’ 정신만 연습했다.

정말 괘..괜찮은 거겠죠, 원장님?


아해야, 학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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