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뺨기러기‘의 생존전략_1부

영어 절벽의 끝에 선 아홉 살 아이

by 밤이 키운 아이

기러기목 가운데 아찔한 생존전략으로 유명한 새가 있다.

‘흰뺨기러기’의 이야기다.

몸길이 60~70cm, ahaanrp 1.21~2.23 Kg.

은회색 몸통에 등과 날개 바깥면은 흰색과 검은색 깃털이 섞여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양뺨에 흰색 무늬가 있다.


‘생존’이라는 말 자체가 목숨을 담보로 하지만

내가 흰뺨기러기라면 수백 번은 더 조상을 원망했을게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천적을 피해 절벽에 둥지를 짓는다.

문제는 정작 생활터전은 바다라는 점이다.

알에서 깬 새끼들은 어리둥절한 상황에 직면한다.

어미의 목소리는 애타게 들리는데 그게 수백 미터 절벽 아래다.

결국 흰뺨기러기 새끼는 아찔한 절벽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린다.


이것도 날개라고 할 수 있나?’ 싶은,


뭔가를 펄럭이며 추락하는 털 한 뭉치를

어쩌면 이미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봤을 것이다.

바로 ‘흰뺨기러기 새끼‘의 첫 비행이다.



영어 절벽에서의 첫 비행


늦은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뜻밖에도 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상담기간도 아닌데 걸려온 전화에 덜컥 겁이 났다.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인데 대체 무슨 사고를 쳤단 말인가?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셨다.


“저… 사교육을 조장하는 건 아닙니다.

정말 조심스럽습니다만,

방과후 영어선생님이 어머님과 상담을 요청하셔서요. “


음? 연유를 듣고 나자 더 아리송했다.

담임선생님도 일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한데

방과후 선생님이 왜 면담을 요청하신단 말인가.

그리고 들려온 충격적인 이야기.


아이의 학교는 2학년 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 방과후 영어수업이 있었다.

정규 수업시간이 아니었기에

우리 부부는 기초 수준의 영어 수업이라 생각했다.

영어 교재를 보고는 조금 수준이 높아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아홉 살 녀석은 매번 빼곡하게 필기를 잘해왔다.

영어유치원도 다니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잘하다니.

한편으로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기로 한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며 안심했다.


그런데,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완벽했던 영어 교재’는 전부 가짜였다.

나름 시사프로그램만 십여 년 넘게 해 오며

온갖 사기 사건을 파헤쳤건만,

나는 아홉 살짜리 꼬마에게 완전히 속았다.


완벽했던 영어 교재의 비밀은 바로 친구들에게 있었다.

아홉 살 녀석은 ‘영어’라는 새로운 언어 절벽에서

용감하게 몸을 던지지 못했고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대신 다행스럽게도 교우 관계는 문제가 없었는지

친구들이 나서 빈칸을 채워준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무엇을 했는가?

검은 것은 꼬불거리는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니

낙서처럼 보였는지 종일 낙서만 했단다.

1년 내내 딴짓만 하는 아이를 본 방과후 영어선생님은

그런 아이를 걱정하셨다고 했다.

결국 우리 부부가 흡족해하며 감탄했던 것은

순수하게 다른 아이의 영어 실력이었다.




‘아 아홉 살 님아! 어찌 그 고독한 길을 홀로 걷고 있었는가!’


우리 부부는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하길 바랐기에 사립초등학교를 선택했다.

특히 1학년 하교 시간만 하더라도 12시 반에 끝나는 국공립학교는

맞벌이를 하는 우리 집 사정에 맞지 않았다.

아이가 입학할 무렵은 코로나 시국이 한창이었는데

당시 사립초등학교 입학경쟁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13대 1. 그 바늘구멍 같은 경쟁률을 뚫고

이 운 좋은 녀석은 당첨됐다.

그날 덩실덩실 춤까지 췄건만, 어미가 미처 몰랐던 것이 있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이었던 것이다.

일부 아이들은 이미 영어로 프리토킹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홉 살 아이는 직장 어린이집 경력이 전부.

친구들에게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아이는

영어를 싫어해서 열심히 안하는냥 연기를 했던 듯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표현하듯

선생님이 보내주신 아이의 낙서는 검은 색칠자국만 가득했다.


글로벌 시대에 벌써부터 영어를 포기하고

검게 검게 색칠만 하고 있는 제자를 보자니

선생님들은 얼마나 또 속이 타셨겠는가.


“이 미련한 엄마야 사립학교를 보냈으면 제발 영어 학원 좀 보내라”


차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없으니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운을 뗀

심정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아빠의 해외 지사 발령 소식을

선생님께 털어놓기로 했다.

그것은 아홉 살 영포자(영어포기자)도

3년 간 해외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써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남편의 발령을 나보다 더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다.

정말 다행이라는 말씀도 여러 차례 하셨던 것 같다.


자, 영어 절벽이다!

살려면 뛰어내리거라, 힘뺨기러기 꼬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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