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놀러올래?
만약 당신이 해외 국제학교를 고려 중인 부모라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첫 번째는 영어실력 향상이고,
두 번째는 아마 다양한 인종의 친구일 것이다.
다만, 베트남의 국제학교를 생각한다면 한 가지를 더 염두해야 한다.
베트남 국제학교는 생각보다 한국인 친구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호찌민에 거주 중인 교민이 2024년 기준 대략 9만여 명에 이른다고 할 때,
한국인 아이들이 현지 학교를 다니겠는가?
대부분 국제학교를 선택한다.
실제 미국계 국제학교인 이슈믹의 경우 한 반의 정원이 20여 명 내외인데,
반마다 한국 학생의 비중은 최소 5명에서 7명 정도이다. 거의 4분의 1은 한국인인 셈이다.
물론 가장 많은 비중은 부유한 베트남 국적의 친구들이 차지한다.
가끔 학교 단체사진을 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단순하게 머리카락 색만 보더라도 한국학교 풍경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슈믹은 서양 학생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덕분에 엄마들 사이에는
국제학교 입학시험이나 교내 연극 등 오디션 등 경쟁이 있을 때마다 농담 삼아 소문이 돌기도 한다.
노란 머리카락은 프리패스 골든티켓이라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염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쩌겠는가.
더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같은 국적 친구들끼리 먼저 가까워진다.
국제학교에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반 친구 엄마로부터 온 문자였다.
요즘 자신의 아이와 아홉 살 집착남이 부쩍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 플레이데이트를 하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플레이데이트가 뭐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그냥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되느냐,
또는 같이 놀자,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같은 아파트 단지의 친구와 자연스럽게 서로 집을 오가며 종종 어울리긴 했지만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세상에~ 너무 설레잖아!
나는 아이보다 더 들뜬 마음으로 기꺼이 데이트에 응했다.
준비물은 수영복과 간단한 다과 정도.
호찌민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대부분 수영장 시설을 갖추고 있기에
플레이 데이트에서 수영은 필수인 듯했다.
처음인데 이야기만 하면 어색하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시간도 잘 가고, 이야깃거리도 생기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플레이데이트는 아파트 수영장에서 이뤄졌다.
나는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준비했더랬다.
아이들을 물에 풀어놓고
엄마들끼리 베트남에 오게 된 경위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플레이데이트로 더 끈끈해진 녀석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3년 내내 단짝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친구는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국제학교의 경우 플레이데이트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았다.
공부도, 친구 만들기도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 세상인 걸까.
학원에 가지 않는 한 뛰어놀 친구를 찾기도 힘든 세상이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한편으로는 부모들이 서로 알고 지내니 더 든든하다는 장점을 떠올리며
우리 부부는 고독한 사냥꾼마냥 플레이데이트 신청에 나섰다.
첫 번째 데이트 신청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체코 국적의 아이였다.
매일 같은 학교 셔틀버스를 타는 토마스라는 친구였는데,
우연히 테니스 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주말에 함께 테니스를 치자고 권했다.
마침 테니스를 칠 줄 몰랐던 아이의 부모는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초대를 허락했다.
경험이 풍부한 한국인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정확한 놀이 시간과 연락방법, 간식을 먹여도 되는지, 아이의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한 후,
그렇게 두 번째 플레이데이트가 시작됐다.
나는 십여 년 전에 6개월 동안 배운 테니스를 떠올리며 다시 라켓을 들어야 했다.
자전거 타기와 달리 몸은 십 년 전에 배운 테니스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복식 게임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끼리 시켰더니 서로 서브만 하다 게임이 끝났기 때문이다.
자식이 뭔지, 나는 ‘파이팅’을 담당했다.
한 시간 동안 테니스를 친 후 나는 헛구역질을 했지만
다행히 토마스는 무척 즐거워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한국에 돌아간 사이 토마스의 엄마는 종종 우리 아이를 초대해 밥도 먹이고 돌봐줬다고 한다.
체코가 이렇게나 따뜻한 나라였다니.
이젠 휴가를 기다리는 아이가 한 명 더 늘었기에
나는 부지런히 날아가 몸이 부서져라 테니스 라켓을 허공에 휘둘러댔다.
일 년 후 먼저 토마스 가족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 가족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더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홉 살 집착남에게도 다양한 친구들이 생겼다.
단짝 한국인 친구를 포함해 크리스티안, 제이콥 등등
이름만 들어도 글로벌하지 않은가.
아이가 운동도 잘하고 사교성이 있다면 그 시간이 조금 더 짧겠지만
만약 아홉 살 집착남처럼 수줍은 아이라면
한두 번쯤 부모가 플레이데이트 사냥꾼이 되어보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조금 쑥스럽지만
아이의 친구도 만들고,
간만에 설레는 기분도 느끼며 생각보다 즐거울 수 있으니.
토마스, 체코에서 여전히 잘 지내지?
테니스 같이 쳐준 한국 아줌마 잊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