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서의 필수 생존법
스페인 작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렇게 말했다.
“준비될 때까지 삶을 미룰 수는 없다.
삶은 우리의 코앞에서 발사된다.”
중요한 선택에 기로에 놓일 때면 종종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선택을 미루고 싶어질 때면이 되겠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지금은 정신없으니까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차차…’
그러나 몇 번의 교훈을 얻은 후 나는 대체로 선택을 미루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준비’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방패 삼아,
선택을 미룰 때마다 가장 최선의 타이밍을 놓치곤 했기 때문이다.
비겁함의 대가는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이었다.
최선의 선택이 아닌 덜 나쁜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
완벽한 준비는 있을 수 없고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은 늘 찾아왔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늘 준비를 하라는
작가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나는 그저 코앞에서 발사되는 삶을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즐기기로 했다.
남편의 베트남 주재원 발령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코앞에 닥치는 삶이 우수수 휘몰아친다는 것?!
준비하면 또 아홉 살 집착남이다.
그는 알파벳 한 줌만 움켜쥐고 영어절벽에서 뛰어내렸으며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베트남이었다.
고작 아홉 해의 삶도 이토록 고난의 연속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암흑 같은 첫 학기를 마치고 어엿한 4학년이 되었다.
또다시 새 학기 과목별 참관수업이 시작됐다.
4학년 때부터는 참관수업에 종종 빠지는 부모님들도 많았기에
이미 이런저런 이유로 삼일째 학교를 방문했던 나는 학교에 갈지 망설였다.
그래, 단짝 친구 엄마에게 참석 여부를 물어보고 결정하자.
그런데,
“수영 참관수업은 한 번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안 가면 또 아이가 서운하려나?”
“엄마들은 많이 안 오는데 그래도 일단 와봐.”
결국 나는 부랴부랴 수영수업을 보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호찌민 국제학교에는 체육시간과 별개로 수영 수업이 있다.
각 학교마다 대표 선수군이 넓게 포진해 있고
학교 대항전을 하는 등, 수영에 제법 진심인 편이다.
잠시 후, 엄마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수영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호루라기 구령 아래,
쉬지 않고 자유영으로 25미터를 왕복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의 아홉 살 집착남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는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단짝 친구 엄마는 수영장 맨 끝 레일을 가리켰다.
아홉 살 집착남은 다른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바로 그곳에 있었다.
놀라운 건 그뿐만 아니었다.
그마저 세 명 중 두 명은 개구리수영 그 비슷한 무엇을 하고 있었지만
나의 아이는 그야말로 개헤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수업을 못 따라가는 상황이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우리도 입학 예정인 국제학교에 수영과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삶이 코앞에서 발사된다고 한들,
수영도 못하는 아이를 물속에 떠밀 순 없었다.
우리도 나름 생존을 위한 준비를 했다.
베트남에 도착한 직후부터 아홉 살 집착남은 값비싼 1대 1 수영과외를 시작했더랬다.
선생님을 수소문해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수업을 받았다.
어느덧 수영을 배운 지 8개월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자유영은 고사하고 개헤엄이라니?!
준비를 해도 삶은 이렇듯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사된다.
저기 수영 과외선생님?
저랑 이야기 좀 하십시다….는 2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