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용기

실은 상처받을 수밖에…

by 밤이 키운 아이

과거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싶은 이들은 이렇게 묻곤 했다.


당신이 사막에 갈 때 반드시 한 마리의 동물만 데려갈 수 있다면?

1번 원숭이, 2번 사자, 3번…..“


그리고 요즘 친구들은 이렇게 묻는다.


“넌 MBTI가 뭐니?“


인간의 성격을 어찌 16가지 MBTI 유형으로만 나눌 수 있을까만은

질문의 답을 하는 순간,

너무도 당연하게 얼추 예상범위의 인간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예전에 MBTI 도사와 같이 일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의 유형을 알고자 했고 각각의 성향을 점쟁이처럼 읊어주었다.

취미를 넘어선 MBTI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과 잘 맞는 유형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기도 했는데,

문제는 상극인 유형에 대해서도 그는 강한 믿음을 가진 듯했다.

새로운 후배가 왔을 때였다.

한참 그의 취미생활에 대한 지론이 오간 후, 당연히 취조가 시작됐다.

후배는 조심스럽게 16가지 유형 중 한 가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MBTI 집착남의 표정이 어딘가 떨떠름한 것이 아닌가.

그 이유는 바로 아무래도 자신과 상극인 유형의 성격 같다는 것이다.

후배는 강력히 부인했다.

당연히 자신의 직속 상사와 상극을 자처하고 싶은 후배가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이후로도 회식 자리에서 사담이 오갈 때면 집착남은 후배의 MBTI를 추궁하곤 했다.

1년 뒤 후배는 더 좋은 기회가 생겨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마지막 고백을 잊을 수가 없다.


“저 사실은 MBTI ㅇㅇㅇㅇ 이에요.”


환송회를 하며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를 기다리던 우리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아니 회사를 떠나는 마당에 뭔 MBTI 타령인가 싶던 그때!


“맞지? 그렇다니까. 내가 처음부터 ㅇㅇㅇㅇ 같다고 했잖아.

이상하더라니까. 그땐 왜 죽어도 아니라고 했어!“ _ MBTI 집착남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어요.

이젠 얼마든지 미워하셔도 됩니다. 호호호호” _MBTI 상극 후배


믿기 힘들겠지만 실화다.

그넘에 MBTI 가 무어라고.

일 년 동안 자신을 감추며 미움받을 용기씩이나 필요했단 말인가.

어쩌면 우리는 미움받을 용기가 없기에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MBTI를 내세우는 지도 모르겠다.



씩씩한 욕망 아줌마의 두 얼굴


문득 회사를 떠나던 후배의 마지막 한 마디가 떠오른 건

아마 나에게도 무언가와 맞설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휴가를 맞아 베트남에 돌아갔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나는 당연히 학교에 불려 갔다.

아홉 살 집착남은 이제 교실에서 잠만 자진 않았지만

반항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귀는 조금씩 들리지만

말할 수 없고 쓸 수도 없으니 도무지 수업에 흥미가 붙지 않는 듯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물을 때마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엄마가 집에 없어서요.”


음? 같이 등교해 옆에서 감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엄마가 기러기인 것과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로 나는 항변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이의 심리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물론 엄마가 늘 함께하는 상황과는 다를 수밖에 없기에

나는 그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대답만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러기를 선택한 나는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엄마인 걸까?


아이의 하굣길에 마중을 나간 한날은 아이 친구의 엄마와 마주쳤다.

집착남과 나란히 있는 나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냉큼 엄마라고 소개를 하자, 그녀도 반갑게 인사를 전했다.


“늘 아빠와 단둘이 학교행사에 오는 것만 봐서 엄마가 안 계신 줄 알았어요.”

“아닙니다. 제가 엄마입니다. 한국에 멀쩡히 살아 있다고요!“


한국에 돌아와 직장 선배와 밥을 먹으며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 일화를 털어놨다.

또 꼬마 녀석의 수업을 안 듣는 이유와

다시 ‘So..sorry‘밖에 할 말이 없었던 상황도 들려줬다.

그런데 분명 웃자고 한 이야기에 선배가 분통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아니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엄마가 일을 하면서 매달 그렇게 기를 쓰고 날아가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면 애들이 무조건 학교에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한대?

그리고 친구 엄마는 설령 그렇게 생각을 했어도 너무하네!“


더 당황스러운 건 나의 신체반응이었다.

이 와중에 왜 또 밥 먹다 말고 주책맞은 눈물이 눈앞을 얼쩡거린단 말인가.

분명 나는 웃자고 꺼냈던 이야기인데.

그렇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던 후배처럼

어쩌면 나는 상처받을 용기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실은 엄마라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말들 뿐이었는데.

당신의 아이가 불행하다는 말에 상처받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상처받을 용기가 없던 나는 늘 씩씩한 기러기인척 했던 것 같다.


욕심 많은 기러기도 아프다.

선배의 분노 덕분에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마음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로소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애써 씩씩한 척하지 않을 진짜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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