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도 촌지가 있다고?!

베트남의 스승의 날

by 밤이 키운 아이


촌지에 대한 옛 기억


꽤 오래된 서랍 속 기억이 있다.

기억 속 서랍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랍에 대한 기억이다.

학창 시절 나의 엄마는 학교에 오는 걸 지독히 거부하셨다.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에서는 방학 때마다 자율학습을 하곤 했는데

학부모들은 간혹 더위에 지친 아이들을 위해 특식을 준비하곤 했다.

하지만 햄버거, 피자 등 성장기 아이들의 먹성은 한 집에서 부담하기에는 다소 큰 금액이었다.

이러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 학교에는 실로 단순하고 잔혹한 방법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일등부터 십 등까지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협찬을 받는 것이었다.

성적이 나쁜 친구들의 부모님에게 돈까지 걷기가 부담스러우니,

차라리 성적이 좋은 부모님들이 기분 좋게 내시라, 는 깊은 뜻이란다.

반장 어머니의 주도로 그렇게 우리는 방학마다 특식을 누리곤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나의 엄마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잠깐의 대화가 오가고 엄마는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 바로 반장 어머니의 전화였다.

몇몇 부모님도 거절의사를 밝히셨는지 결국 우리 반은 얼추 십오 등까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시에는 굳이 왜 거절을 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훗날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엄마와 방학 특식비에 대해 문득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노고를 위로해 드리는 식사자리가 더 있다는 말에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설명하셨다.

농담 삼아 전교 1등이면 춤을 추며 가사도우미를 해서라도 특식을 쐈겠으나,

자신이 뭐라고 돈을 걷고 담임 선생님까지 따로 뵙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릴 땐 미처 몰랐던 스토리도 있었다.

이후에도 엄마는 도통 교문을 넘지 않으셨는데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왔다.

학년말 진로 상담은 반드시 부모님과 동행해야 했기에 모처럼 엄마도 학교를 찾았더랬다.

처음 책상을 사이에 두고 모녀는 나란히 앉아 선생님과 마주했다.

그런데, 잠시 후 선생님이 보여드릴 게 있다며 엄마에게 옆으로 오라고 권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가 선생님의 옆 자리로 가셨을 때 선생님의 책상서랍은 한참이나 열려있었다고 했다.

그때 아차 싶었다고. 주스가 아니라 봉투를 들고 왔었어야 했다고 엄마는 후회하셨단다.

이제와 주스를 서랍에 구겨 넣을 수도 없고 그날의 면담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그때라도 봉투를 넣었다면 네가 대학교에 갈 때 조금은 더 신경을 써줬을까.

못내 찜찜함만 남은 모녀의 서랍에 대한 기억이었다.



베트남의 스승의 날


시간은 흘러, 이제는 스승의 날 전날부터 공지가 날아오는 시대가 도래했다.

대부분 선물, 카네이션 모두 받을 수 없으니 마음만 받겠다 신신당부하는 내용이다.

하물며 촌지는 주는 사람도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다.

매년 11월 20일은 베트남에서 스승의 날이다.

담임선생님과 우리 가족은 <아이 행복 프로젝트로> 한 팀이 아니던가.

우연히 알게 된 스승의 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이 부담스러우실까 저어 돼 우리는 작은 향초하나를 준비했다.

고급 향초가 아니라 문방구 같은 곳에서 아이가 고른 그야말로 작디작은 마음이었다.

그조차 보내도 될지 한참이나 고민하다 아이가 박박 우겨 가방에 챙겨 보냈다.


이듬해 베트남에서 두 번째 스승의 날이 찾아왔다.

학급 대표 부모님은 단체 대화방에서 스승의 날을 위한 비용을 걷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 약 2만 5천 원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한 반에 20명 정도 되니 모두 합하면 50만 원 정도 되는 큰 금액이었다.

이 돈으로 아이들의 단체 사진을 새긴 기념품과 꽃 등 행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우연히 친구 엄마를 만났을 때였다.


“자기 스승의 날 선물 뭐 준비해?”

“반장 엄마가 회비 걷었잖아. 회비 냈지? “

“어… 냈지. 집에 가는 거야? “


회비를 걷으니 너무 편하다고 좋아하는 나를 바라보는 친구 엄마의 표정은 뭐랄까.

서랍에 대한 기억만큼 찜찜했다.


“혹시.. oo엄마는 선물 준비했어?”

“으.. 응. 우리는 스파 상품권. 우리는 늘 그냥 스파 상품권으로 해.”

“늘? 원래 스승의 날 선물하는 거야? 다른 집들도 다 해?”

“아무개 엄마는 이번에 고깃집 상품권 준비한다던데. 베트남은 촌지가 있어. “

“아니 담임선생님은 베트남 사람도 아니잖아! “


이후로도 만나는 엄마들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한국 고깃집이나 마사지 상품권을 준비한다고 했다.

비용은 오만 원에서 십만 원까지 다양했다.

아예 돈이 담긴 촌지를 건네기도 한단다.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보조교사와 운동이 특기인 아이들은 과목 선생님까지 따로 준비를 한다고 했다.

악습이지만 어떡하랴.

심지어 우리 아이는 특별 관찰 대상이었으니.

아무것도 준비를 못한 나는 스타벅o 커피숍으로 헐래 벌떡 달려갔다.

커피를 오만 원어치나 먹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삼만 원 상당의 카드를 준비했다.

이럴 거면 단체로 돈은 왜 걷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반항심에 이만 원을 깎았다.


며칠 뒤, 친구 엄마와 식사를 하던 중 식당에서 우연히 학교 보조선생님을 마주쳤다.

선생님은 친구 엄마에게 선물 고마웠다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는 한 마디 공치사도 없지 않은가.

나도 스타벅스 상품카드를 준비했단 말입니다.

보조선생님은 기러기인 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했지만 무척 서운했다.


이래저래 나는 촌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커피 상품권을 오만 원권으로 준비해야 했던 걸까.

국제학교이지만 국제적이지 않은 베트남 국제학교의 두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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