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40권 리뷰 도전기 03 - <룩백>
어릴 때는 내가 꿈꾸는 모든 걸 해낼 줄 알았다. 피아노를 정말 잘 쳐서 나만의 콘서트를 열거나, 대통령 선거에 당선이 된다거나, 묘기를 정말 잘 부려서 혼자서도 서커스를 하는 그런 자신감이 넘쳐흘렀었다.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을 느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시간이었다. 친구들끼리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아무리 해도 한 친구를 제칠 수 없었다. 최대한 따라가 보려고 해도 그는 이미 나보다 두 걸음이나 앞서 있었다. 진 게 분해서 달리기 연습을 했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찼을 때 다시 시합을 했다. 결과는 완패. 어린 나이에 쓴 맛을 처음 보고 달리기는 내 적성을 아님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다른 재능을 키우면 된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며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세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보다 다른 걸 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기준도 점점 높아져 갔다. 노력을 해도 안되자 내가 세웠던 여러 꿈들의 푯말들을 하나씩 뽑아버렸다. 거창했던 포부는 어느새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남들과 비교해서 잘하는 게 안 보였고,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임을 인정해야 했다. 과소평가. 높아진 기준들에 비해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이 남들 앞에 내세우기엔 부족해서 칭찬을 받아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겸손을 떨며 떨떠름했다. 왜 이런 부족한 모습을 좋아해 주는지 이해를 못 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뭐 하나 특별하지 않았던 내 재능을 알아봐 준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강의를 할 정도로 인쇄를 잘하는 사람, 베이스 기타를 잘 치는 사람, 다양한 음악을 아는 사람,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 그리고 잘 들어주는 사람.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능력들을 친분이 있지 않던 책방 가족분들이 알아봐 주셨다. 한사코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분들의 감사에 진심이 담긴 것을 느끼고 더 이상 스스로 내려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감사에는 고마움으로 받아야 하고, 타인이 보는 재능이 더 정확함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룩백>을 보며 나는 주인공 후지노에 이입이 됐다. 그녀도 은둔 외톨이로 그림을 그리던 쿄모토의 재능을 보고 만화가라는 꿈을 접으려 했다. 마치 나처럼 너무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이 길이 나와 맞지 않아 그만두려 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꿈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다른 재능을 알아본 쿄모토 시선과 칭찬 덕분이었다. 후지노 본인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타인이 자신을 장점을 알아주자 그녀는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신나게 점프를 하며 신을 내며 스케치 연습을 다시 이어나갔다. 스스로 덮으려 했던 재능을 타인이 진정으로 알아봐 준 순간 후지노의 시간은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재능 있는 사람인가를 알아봐 주는 건 내가 할 수 없다. 가늠이 안 되는 재능의 모습을 잃어버리기 쉬운 사람은 오롯이 본인이다. 비관하고, 실망하고, 비교하며 깎아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볼품없는 재능을 알아봐 주는 건 내가 아닌 타인을 통해서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 과대평가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에서 벗어난 타인이 봄으로써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러니 look down 하지 말자. 누군가는 당신의 모습에서 look up을 해주는 재능을 알아봐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