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한다 말해요

by 코르테오

아버지가 금산에 또 내려가신다고 한다. 내심 기뻤다. 집에 혼자 있을 수 있어서다. 아버지와 대화가 껄끄러워지게 된 건 퇴촌으로 이사 오고 나서다. 나름대로 아버지에 대한 악감정을 안 가져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사오기 전에는 인사나 애정표현에 아무 거리낌 없이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쉽게 내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 내가 쓰지 않는 마음을 내라는 숙제라니. 참으로 난감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매일 아침 전화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좋은 하루 되라고 얘기는 한 적이 많아도 사랑한다고 매일 마음을 전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당연한 마음이라 많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알 정도였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우리 가족은 포옹을 하고, 볼에 뽀뽀를 하고,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전통은 고작 2년 만에 사라질 정도로 부자 관계를 데면데면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걸 해야 글이 써지니 증오를 거두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먼저 연락한 게 뜻밖이라는 듯이 답을 하신다. 뭔가 꿍꿍이가 있냐는 듯 취조하신다. 멋쩍게 그런 게 아니라고 반문한다. 그저 오늘 하루 좋게 보내라고 안부차 전화한 거라 말씀드렸다. 스피커로 들리는 목소리지만 왠지 기쁜 눈치다. 끝나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내게 사랑한다고 대답해 주셨다. 어깨에 걸린 무거운 추가 덜어진 느낌이었다.


사랑의 통화는 이번 주 내내 드렸다. 하루가 지나가면서 아버지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오늘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알려주셨고, 주변에 아름다운 관광지를 가신 소감도 밝히셨고, 주변에 깻잎이 많아 저녁을 해 드시는 등 주변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공유해 주셨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의 힘의 변화가 대단한다는 걸 느꼈다. 거리감이 있던 아버지와 나의 관계가 좁혀지는 느낌이었다. 금요일에는 먼저 전화를 거실 정도로 안 쓰는 마음 쓰기 프로젝트는 기억을 담당하는 구석 저편에 버렸던 다짐을 꺼내왔다. ‘애정을 아끼지 말자’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애정 표현을 아끼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 누나, 나는 더 서로를 보듬었고, 좋은 말을 했다. 서로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그걸 어기기로 마음먹었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이번 5일간 쓰지 않는 마음 내보기는 꺼져갔던 가족에 대한 사랑에 다시 불을 지폈다. 서로 반목하지 않고, 사랑하기로. 그것이 내 깨달음이었다.


퇴근하니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우리 둘은 깊은 포옹을 나눴다. 이런 스킨십이 낯설지 않지만 뭔가 더 각별함이 느껴졌다. 참 시답지 않은 이유로 내가 아버지를 밀어놨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는 내가 쓰고 싶은 마음을 좀 덜 해보려고 한다. 반목하기보다는 후회 없이 아버지를 대하고 싶다.


‘사랑해요’


늘 그랬던 것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감사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