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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r 18. 2022

밑 돌

샛바람 타고 버선 꽃 향기가 묻어온다.

   지독한 가뭄에 큰형이 걱정이다. 못자리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까 염려돼서다. 형은 바닥에 고인 개울물 한 바가지라도 퍼 올리려 밤샘 고생이다. 물을 대던 청천저수지가 바닥을 보인 탓이다. 웬만한 가뭄에도 끄떡없던 저수지였다. 둑을 쌓고 담수를 시작한 이래 바닥을 드러낸 경우는 드문 일이다. 

  가뭄은 수몰 지역으로 지정돼 고향을 떠나며 남겨 놓았던 돌담도 함께 드러냈다. 허물어지긴 했으나 돌담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모양새다. 저수지 공사로‘시루셍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고향을 떠난 것처럼, 돌담도 저수지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돌이 하나둘 빠져나가 무너졌다. 몇몇은 나름대로 뭉쳐 근처를 떠나지 못한 채 무더기로 남아있다. 이사 가기 전 가지런하고 빈틈없이 야물 던 돌담은 허물어졌으나 밑돌만은 꿈쩍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뒷산에 조상 묘가 있고 앞으로 장산천이 흐르는 ‘시루셍이’ 마을 양지바른 곳에 집을 장만했다. 이사하고 이태지 난 봄에 싸릿가지 울타리를 없애고 돌담을 쌓았다. 돌담은 처음엔 투박하고 차가워 보이나 배수가 잘돼 장마에 젖어도 괜찮고, 한겨울 얼고 녹기를 반복해도 움츠러들지 않아 무너질 염려가 없어 좋다고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끼 끼고, 돌 버섯 덮이면 고색창연한 멋이 청양‘장곡사’ 돌담에 버금갈 거라 했다. 담쌓을 돌이 집 앞 장산천에 지천으로 널린 것도 돌담을 쌓는데 한몫했다. 

  아버지는 장산천에서 각(角) 지고 번듯한 돌을 골라 지게로 져 날랐다. 덩치가 큰 돌은 동네 장정들과 합세하여 목도로 옮겼다. 아무리 큰 돌이라도 장정 넷의 힘을 당할 수 없었던지 순순히 들렸다. 목도 줄에 묶여 오랜 세월 박혀있었던 장산천을 떠났다. 목도로 옮길 적에 아버지는 “어이-여, 어이-여” 추임새를 넣어 목도꾼 발걸음을 맞췄다. 나도 어른 주먹만 한 돌을 양손에 들고 목도꾼 뒤를 따르며 추임새 흉내 내는 일은 여간 재미난 일이 아니었다. 

  큰 돌은 새끼줄 띄어놓은 기준선 따라 밑돌로 놓였다. 아버지는 밑돌 놓을 때 큰형을 불러 일렀다. “맏이는 집안의 밑돌이나 매한가지여, 아비 없을 땐 대신 식구들을 잘 보살펴야 데는 겨. 그래야 남들이 깐보지 않는 벱-여.”라며 기초를 놓았다. 

  밑돌로 담의 둘레를 정하고 나면 나머지 돌들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쓰임새가 정해졌다. 둥근 형태 돌은 바깥쪽, 사각 형태는 안쪽에 쌓기로 했다. 놓일 자리가 정해지고 나면 고임돌로 균형을 잡았다. 

  돌담 쌓을 때 아버지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돌은 될 수 있는 한 자연 상태 그대로 활용했다. 냇물에 수백 년 동안 구르고 부딪치며 다듬어져 가장 단단한 형태라. 망치로 두드리고 정으로 쪼개면 자연미가 없어질뿐더러, 얼 먹어 수분이 스미게 된다고 했다. 겨울철 스민 물기가 얼면 동파로 돌이 깨져 담이 무너질 수 있으니. 자연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다. 

  동글동글한 돌은 바깥쪽에 배치했다. 둥그런 뒷산과 초가지붕의 곡선이 함께 어우러져 돌담이 부드럽게 보이도록 했다. 전체적인 돌담 형태는 지붕 추녀와 안마당을 감싸듯 곡선으로 만들었다. 곡선의 유연함으로 안정감을 추구하고, 무게의 분산 역할로 견고해진다고 했다. 약한 달걀 껍데기가 단단하게 유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담의 높이는 이웃과 단절됨이 없도록 낮게 쌓아 소통에도 신경을 썼다.     

  큰 돌은 되똑거려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다. 그럴 땐 조그만 돌들이 균형을 잡아주는 고임돌로 요긴하게 쓰였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여러 형태의 돌들도 나름대로 채워야 할 공간이 따로 있어 갖추갖추 제 몫을 했다. 

  돌아가며 한 켜씩 쌓아가자 담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정한 원칙을 기본으로 눈보라나 비바람에도 끄떡없도록 틈 사이를 잔돌로 꼼꼼하게 채워 돌담을 완성시켰다. 

  그런 다음 담 밑을 따라 살피꽃밭을 만들고 버선 꽃나무를 심었다. 꽃이 만개하기 전 꽃잎 모양이 아기 버선을 닮았다 하여 골담초를 우리 마을에선 버선 꽃이라 불렀다. 오뉴월이 되면 버선 꽃나무는 장독대 옆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와 함께 노란 꽃을 피웠다. 나비처럼 생긴 버선 꽃과 요강을 닮은 노란 감꽃, 감또개가 담 위에 내려와 돌담을 장식했다.    

사진 :  lee jang

  그랬던 돌담이 저수지 담수로 물에 잠겼다. 물 흐름에 방해되는 돌담은 저수지 물에게는 눈엣가시 였다. 저수지 물은 담을 무너트리려 파도를 일으켜 밀기도 하고, 물살로 흔들며 괴롭혔다. 몇 해를 버티다 돌담도 결국 포기했으리라. 

  짐작하건대 물살은 힘이 약한 작은 잔돌부터 하나둘씩 빼내 돌담 스스로 무너지도록 했을 거다. 그다음에는 무너진 담 위를 수시로 넘나들며 우리 삶에 흔적을 지웠으리라. 아무리 괴롭혀도 맏형 격인 밑돌만은 어쩌지 못했나 보다. 워낙 단단하게 자리 잡은 탓이기도 하지만 고향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꺾지 못했던 것 같다. 밑돌은 무거운 돌담을 짊어지고 참아온 고통의 세월만큼이나 꿈쩍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큰형도 밑돌과 매한가지다. 형제들이 물살에 고임돌 빠져나가듯 하나둘씩 떠날 때 “내라도 있어야 고향이 있을 거 아녀.”라며 버텼다. 맏이라는 책임은 무겁고 짊어질 짐이 많은 듯하다. 

  거북등같이 갈라진 저수지 바닥 한가운데 허물어진 돌담을 복원해 본다. 그 안에서 아홉 남매를 키웠을 부모 생각에 버선 꽃 가시에 찔린 듯 가슴이 아프다. 어디선가 샛바람 타고 달착지근한 버선 꽃 향기가 코끝에 스민다. 아버지 냄새가 묻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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