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높고 낮은 지위나 빈부 격차 없는 평등한 세상이다.
벚꽃 만개한 대전현충원 둘레길 산책에 나섰다. 정문에 들어서자 우뚝 솟은 갑하산이 뒷면에서 구 척 장수처럼 버티고 있는 듯 예사롭지 않은 산세다. 산줄기는 우산봉으로 이어져 서북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감싸 안은 산세는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암시한다. 역사적으로도 이곳을 명당으로 꼽았던 듯하다. 인조반정의 공신 리귀(李貴)의 아들 ‘이시담’의 묘가 이곳에 있다. 인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격정과 혼란스러운 풍파가 없고, 근심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꾼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불가사의한 세상‘샹그릴라’를 그리워하며 명당을 찾는다. 이곳에 현충원을 조성한 것도 그런 이유를 배제할 수 없다.
둘레길은 호국영령들이 잠든 외곽을 도는 팔 킬로미터 구간이다. 왼쪽 능선 따라 첫 구간인 빨강 길이 시작된다. 무지개색의 이름을 붙인 일곱 구간 중 하나다. 소나무, 잣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울창한 숲길이다. 이곳에 잠든 이들을 생각하며 걷는 의미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산책길에 들어서자 우뚝 선 무명용사 탑이 눈에 들어온다. 포탄에 살점이 찢겨 가루가 되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잘 조각된 높다란 석탑 하단부에 모든 신이 한데 모여 그들의 행복한 영면을 빌고 있다. 그들의 희생으로 남겨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고의 예우로 그들을 추모하는 것뿐이다.
숲 사이로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한 한 무리와 마주쳤다. 이들은 이름이라도 남긴 탓에 이곳에 도열해 있다. 잘 훈련된 탓일까, 단단한 제복 탓일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얼굴엔 웃음도 표정도 없이 근엄해 보인다. 한 치의 높낮이도 없고 똑같은 키에 각 잡힌 단단한 몸매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계급과 이름, 순직한 장소가 다를 뿐이다.
벚나무 몇 그루가 그들 머리 위에 꽃가루를 뿌린다. 눈처럼 내리는 벚꽃잎을 반기거나 좋아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않고 받아들일 뿐이다. 꽃잎보다 더 많은 총탄이 빗발쳤고, 하늘이 무너지듯 포성이 계속되던 날에도 꿈쩍하지 않았었다. 지금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지켰었다. “어머니”란 외마디 비명마저 포성에 묻혀 버린 날.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꽃잎은 모자도 쓰지 않은 단단한 병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혹시, 멈춰버린 그날 마지막으로 불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날까 해서다. 너무 오래된 탓일까! 마지막 외침마저 잊은 듯 반응이 없다.
사병묘역을 지나 조그만 연못가를 걷는다. 새순을 올리지 못한 마른 창포 줄기 사이에서 일찍 눈을 뜬 도롱뇽 새끼 몇 마리가 알집을 헤집고 나온다. 죽음의 세상에서 유일한 생명이 탄생하는 곳이다.
대나무 숲길에 접어들자 한 줄기 골바람이 대나무를 흔들고 지나간다. 흠칫 놀라 기우뚱거리더니 금세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각사각 잎을 비비며 대쪽 같은 절개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구불거린 대나무 숲길 사이로 국가원수 묘역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풍수적으로 선인(仙人)이 손바닥을 보는 형상의 명당이란다. 국가원수 묘역으로 선정된 이유다.
홀로 안장된 ‘최규하 대통령’ 묘지는 크기부터 남다르다. 큼직한 오석으로 만든 비석과 봉분을 둘러싼 화강암 장식이 화려하다. 묘지만 화려할 뿐 오가는 사람은 없다. 옆집 세 가구는 비어있어 같이 지낼 친구도, 뿌려줄 꽃비도 없다. 그는 빗발치던 총탄도, 공포도 없었다. 수많은 만장 깃발에 꽃상여 타고 화려하게 이곳에 왔다. 누구는 꽃상여 타고 명당에 자리를 잡고, 누구는 죽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피 묻은 들것에 실려 이곳에 왔다.
그늘 집에서 냉수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5 킬로미터는 더 가야 할 것 같아 신발 끈을 고쳐 맨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지나 삼십여 분을 걸었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에 냉기가 느껴졌다. 염분 섞인 갯바람 냄새가 난다. 2010년 3월 백령도 앞바다에 수장당한 천안함 마흔여섯 명의 넋이 이곳에 있었다. 그날 밤 비보는 분노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칠십 년대 초 나도 그곳에 있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면 그들을 대신해 내가 이곳에 왔을 거다.
부모에게 편지 쓰며 행복해하던 수병, 야간근무를 대비해 취침 중이던 김 하사, 조타실에서 방향타를 잡았던 이 상사. 진해로 귀항하면 벚나무 아래서 꽃비 맞으며 술 한잔하자던 그들의 약속은 두 동강으로 찢어졌다. 죽은 자와 산 자로…!
칠흑 같은 밤, 그들은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심청을 제물로 바쳐 거센 파도를 잠재웠다는 인당수에 수장되고 말았다. 그들이 이곳에 오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숨이 멎은 채 누군가의 등에 업혀 물 밖으로 나왔다. 영혼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산자는 목숨을 걸었다. 뭍에 나와선 더 큰 장애물을 만났다. 수장된 병사의 시체를 놓고 이념 좌판 놀이를 하고, 남북화해의 장애물로 취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휘둘리고, 외면당하다 이곳에 왔다.
이젠 모든 굴레를 벗었으니 행복한 영면에 들길 빌어준다. 꽃구경 삼아 가볍게 나섰던 둘레길 걷기가 이곳에서 냉가슴이 되었다.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 산수유 꽃을 따라갔다. 경찰관 묘역이 있었다. 시위 현장이 묘역 비석에 오버랩된다. 커다란 방패와 철망 붙인 헬멧을 쓰고 곤봉을 움켜진 전경들이 무리 지어 도열해 있다. “전진” 명령이 떨어지자. 시위대가 뚫지 못하도록 대열을 촘촘히 밀착시켰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일사불란하게 진격한다. 쇠파이프와 죽창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무자비하게 공격해 온다. 돌과 불 붙인 화염병도 날아온다. 방어할 수 있는 건 방패뿐이다. 죽창도, 쇠파이프 공격도 이겨내야 한다. 막지 못한 몇몇은 바람 빠진 풍선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꽃상여 타고 온 사람이나 한 줌 재로 돌아온 그들이나 똑같이 이곳에서 만났다. 이곳은 전쟁이나 이념적 갈등도, 높고 낮은 지위나 부귀영화도 없는 평등한 세상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말한 ‘샹그릴라’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이곳이 그들이 원하던 지상낙원이길 기원하며 정문을 나선다. 갑하산 끝자락에 걸려있던 해가 북망산을 넘어가자 이곳 영령들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사진 lee 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