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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May 22. 2022

귀향(歸鄕)

천 원 지폐 한 장을 꼭 쥐고 있었다

  서울에서 자취 생활하며 맞는 명절은 간절하게 고향이 그립다. 찬밥에 김치, 라면에 밥 말아먹는 것이 일상화된 생활이라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명절 음식 생각에 자제력을 잃게 했다.     

  추석 전날, 대천에서 올라와 노량진 산비탈 판잣집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자연스레 추석 명절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다. 온 식구 둘러앉아 흰쌀 반죽에 해콩, 밤, 꿀에 잰 참깨로 소를 넣고 반달 모양 송편을 빚는다. 어머니는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시집 잘 간다며 누이들 솜씨 경쟁을 부추겼다. 그 사이 가마솥에 채반을 넣고 솔잎 한 겹 깔고 그 위에 송편 얹은 다음 한 소쿰 쪄내면 모락모락 김 오르는 솔 송편이 완성된다. 코 속을 자극하는 은은한 솔향기... "아! 죽이지 죽여!"



  이 대목에 이르자,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가자며 자취방을 나섰다. 노량진역에 도착했으나 장항선 막차가 이미  떠난 뒤였다. 고향에 가고픈 강렬한 욕구는 자제력을 잃은 상태다. 무조건 경부선이라도 타고 천안역까지 가기로 했다. 열차표를 구입하려 했으나 호주머니엔 동전 몇 개가 전부다. 서로에게 얼마의 돈이 있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이 역으로 달려온 탓이다. 무임승차를 하기로 했다. 역무원 눈을 피하기 위해 노량진역을 나와 신길동 방향으로 이백여 미터를 내려간 다음, 철조망 끝나는 지점에서 철길 따라 거꾸로 플랫폼까지 올라와 열차에 탑승하기로 했다.    

  많은 귀성객 틈에 섞여 열차에 탑승하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열차 안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이다. 다른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무임승차를 알아보는 것 같아 눈길을 돌렸다. 차표 검사가 걱정이다. 제복 입은 사람만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잊은 지 오래다. 수원역을 통과할 즈음 승무원 두 명이 검표를 시작했다. 화장실에 숨자고 했다. 화장실도 조사하면 도망갈 길도 없고 꼼짝없이 붙잡힐 거라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검표가 끝난 앞 칸으로 객차를 건너뛰자고 제안했다.    

  달리는 열차 밖으로 출입문을 건너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말렸다. 뚜렷한 대책 없이 한 칸 한 칸 뒤편으로 도망치던 중 평택역에 정차했다. 하차하는 승객처럼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뛰어 검표가 끝난 맨 앞 칸으로 올라탔다. 위기를 넘기고 천안역에 도착했으나 짙은 어둠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내일 장항행 첫차를 바꿔 타려면 하룻밤을 기다려야 했다.


  승차권이 없으니 역 개찰구를 나갈 수도 없고, 내일 승차도 문제였다. 플랫폼 벤치에 앉아 목포행, 부산행 몇 개의 열차가 더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 대안이 없었다. 열차가 떠나고 승객들이 개찰구로 빠져나간 빈 플랫폼은 짙은 어둠이 채웠다. 어둠 저편에 객차 여러 량이 주차된 것이 보였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에게 따라오라며 몇 개의 철로를 건너뛰어 주차된 빈 객차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객차 안은 하룻밤 묶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환호를 지르며 친구는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다. 객차 안으로 보안등 불빛이 은은하게 들어와 침실 조명 역할을 해주었다. 2인용 의자는 하룻밤 침대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막 잠이 들었는데 억센 손길이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도둑놈 들”     

  플래시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화들짝 놀라 잠이 확 달아나고 제복 입은 역무원 모습이 보였다. 환상적인 침실의 꿈은 최악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역무원실로 끌려가면서 겁에 질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학생지도 주임에게 교무실에 불려 간 것처럼 차렷 자세를 취하고 역무원의 문초를 받았다.     

  “어디서 탔어, 승차권 내놔 봐, 요금 얼마 주고 왔어?” 순간 머릿속이 까매졌다.

  “750원요” 끌려오면서 서울역까지 요금을 순간적으로 보았던 기억이 나서 둘러대었다. 한 마디에 무임승차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자 훈계가 시작되었다.     

  “객차는 국가 재산이야, 남의 집에 허가 없이 들어와 잠을 자면 도둑질과 같아 알겠어.”    

  “밥은 먹었어?, 어디까지 가는데?.”     

  질문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무임승차 거짓말이 통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추석이라 엄마가 보고 싶어 대천에 가려고 한다며 선생님께 이야기하듯 공손하게 대답했다. 역무원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책상 서랍 속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면서 역전앞에 가서 국수라도 사 먹으라 했다.

  역무원실을 나왔으나 갈 곳이 없었다.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첫차를 타기로 했다. 대합실 의자는 이미 노숙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빈 곳이 없었다. 서성이다 노숙자들이 버린 종이상자 한 개를 가져와 화장실 앞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첫차 시간까지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뱃골이 천 원짜리 돈 냄새를 맡았는지 "꾸르륵-" 소리를 낸다. 내일 대천까지 갈 열차표를 사야 하는데 눈치가 없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꼭 움켜쥔 채 음수기에서 찬 물 한 모금으로 배 골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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