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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Jun 03. 2022

아들의 주례

내 삶이 아들의 행복을 리드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 본다.

  아들 결혼식 주례를 직접 해주고 싶었다. 틀에 박힌 진정성 없는 주례가 싫어서다. 먼저 아들의 행복한 삶을 인도할 내 삶이 행복했는지 반문해 봤다.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받은 적 없는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는지, 결혼 생활은 행복했는지, 우리처럼 살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아들, 딸 한 명씩 두었으니 보통사람의 삶으로 행복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들의 첫출발을 인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혼식 주례를 직접 해주고 싶다는 제의에 아들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부모만큼 진정으로 새 출발을 축복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는 말에 아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사돈댁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었다. 뜻밖에 며느리는 내 제의에 대찬성이라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예식 날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었다. 실수하여 결혼식을 망치는 것은 아닌지, 하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무슨 말로 아들 내외의 가슴에 각인될 행복한 삶의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 진심을 전해 주자! 철학적 의미가 담긴 이상적인 말보다, 살면서 느낀 진정한 행복 요소를 전해 주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긴장한 걸 느꼈는지 아내가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당신 잘할 거예요.” 위로해 주는 아내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속으로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주례석으로 올라가자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카메라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 방송이 시작되자. 숨을 크게 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신랑 입장”

  아들이 씩씩하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장하고 뒤를 이어 사돈 손을 잡은 며느리가 춤추듯 음악에 맞춰 느린 걸음으로 입장했다. 이젠 내 차례다.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랑 아버지입니다.” 하객들이 잠시 웅성거렸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을 낮추고, 약간 느린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주례가 아닌 아들 내외의 행복한 삶을 인도하는 부모로서 식을 진행했다.     

  “결혼했다고 큰 행복을 기대하지 말아라. 부부가 함께 마시는 차 한 잔의 행복, 손잡고 산책하며 나누는 담소의 즐거움, 집안일 도와주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거라. 작은 행복은 하루에도 수십 번 찾아오지만. 로또 당첨 같은 큰 행복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것이니 작은 행복을 모아서 큰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혜다.” 

  서두를 꺼내니 한결 수월해졌다.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결혼하고 나면 돌부처 된 부부 많더라. 시시콜콜하건, 중요한 이야기건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결혼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결혼했다고 서로에게 무엇을 얻으려고 기대하지 말아라, 얻으려 하면 갈등이 시작되고 주려 하면 행복이 시작된단다. 울고 보채는 아기보다 아기에게 조건 없이 주는 엄마가 더 행복한 것이 그 이치니라.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효도니 뭐니 잘하려 애쓰지 말아라. 의도적으로 잘하려 하면 부담되고, 진정성 없는 의무가 된단다. 같이 살 때 하던 것처럼 안부 전화 한 통, 살아가는 소식 듣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기쁨이고 행복이란다. 결혼 축하한다.”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어 사돈께서 ‘삶에서 느낀 가정의 책임’이라는 요지의 덕담을 해주었다. 축하행사가 이어지고 아내가 아들에게 보내는 축시를 낭독했다.  


                      祝 詩

아들아!

넌 언제나 우리 집의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까만 눈동자가 그렇고

까꿍 도 응가도, 아장아장 걸음마도

우리 집의 행복이었다.    


아들아!

네가 어른이 되었구나!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이리 잘 자라주어, 결혼하는구나

아들아! 고맙다.    


아들아!

이젠 어미 둥지 떠나

홀로 가야겠구나.

세상 풍파 다 겪으며 살아갈 

네가 걱정스럽다.   

  

아들아!

이젠 네 세상을 살 거라

거침없이 행복의 광야를 달려가거라.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듯이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단다.   

 

아들아!

행복하게 넓은 세상을 질주하는

너를 보면서

행복을 찾으려 한단다.

행복을 준, 네가 고맙구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더니, 끝내 눈물을 보였다. 숙연한 분위기가 잠시 이어졌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신랑 신부 퇴장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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