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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Nov 26. 2022

투명 인간

007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누구일까?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다. 007 영화에 나올법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연유로 그리 살아야 하는지 그들만이 알 뿐이다. 

 그런 사람 중에 친구 K가 있다. 그는 평범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농사지으며 순박하게 살아온 그의 부모는 6.25 전쟁 중에도 좌․우익 사상적 문제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끊겼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들릴 뿐 그를 만났거나 근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사십 년 만에 찾아왔다. 

  말쑥한 슈트 차림의 멋진 중년 신사로 변해 있었다. 반갑기도 하지만 대학 시절 정치․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던 소위 운동권 ‘삐딱이’가 완벽하게 변신해 나타난 것이다. 쉰 살이 넘었는데도 눈에 광채가 살아있고, 떡 벌어진 어깨며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 걸음걸이가 단단해 보였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는 언변에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지난해 은퇴했다는 그는 몇몇 사람의 소식을 물었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어라는 안부에도 그냥 잘 살았다며 말수를 줄였다. 

 짧고 간결한 말투는 내광쓰광 느낌마저 들었다. 식사를 겸한 술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대화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K의 이야기다. 대학 3학년 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선배라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고. 자연스럽게 안암동 막걸리 집으로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향, 여자 친구, 학교생활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며 술주전자를 비웠다.

  선배는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에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후배를 배려해주는 선배를 만나게 된 것이 행운이라 생각했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다음에 만나 뵐 수 있겠냐며 연락처를 물었다. 선배는 연락처 대신 사업상 바빠 자주 보긴 어려우니 한 달 후 이곳에서 막걸리 한잔하자며 헤어졌다.

  시골에서 올라와 의지할 사람도 변변치 않았던 차에 좋은 선배를 알게 된 것이 커다란 뒷배라도 가진 것처럼 든든했다. 한 달이 무척 지루했다. 연락처가 있었다면 중간에 찾아가고 싶었다. 약속한 날, 한 시간 일찍 도착하여 기다렸다. 혹시 선배가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한 번 만난 선배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림이 최고조에 달해 초조할 즈음 그가 나타났다. 청바지에 점퍼 차림이었다.

  그날도 특별할 것 없는 고향 이야기부터 대학가에서 오가는 시국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졌다. 선배는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혹 질문을 해도 미꾸라지 화법으로 매끄럽게 피했다. 반면 나에 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신비감으로 몇 차례 만남이 이어졌고. 띠앗 같은 정도 들었다.

  어느 날 선배로부터 퇴계로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다른 날과 달리 정확한 시각에 나타났다. 놀라운 건 이 대 팔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검정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끌밋한 차림이었다.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랐다. 

  그는 칭찬과 함께 장학금 추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엔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등록금 마련이 쉽지 않았던 처지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선배에 대한 동경과 믿음에 선뜻 동의했다. 다만 졸업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장학금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전부였다. 모든 대화 내용이 녹취되었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졸업 후, 엄격한 신원 검증 과정을 거친 후 임용되었다. 첫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한 직후, 인쇄된 사직서에 서명했다. 퇴직 날짜는 표기하지 말라 했다. 임용일에 사직서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영상 녹화되는 밀실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 묻거나 이의를 제기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랜 기간 다양한 교육훈련을 통해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 그 후, 개인적 존재는 없었다. 개인보다 조직을, 조직보다 국가를 최우선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실명 대신 코드명이 부여되었다. 완벽하게 투명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친 셈이다. 업무와 관련된 사항은 가족은 물론 동료에게조차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반복된 교육으로 몸에 체화되었다. 일상생활은 성동격서 식으로 행동했다. 가족, 친구도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굳이 물으면 조그만 회사 영업사원이라고 둘러댈 뿐이다. 친구 사이에서 잊혀 지 길 원했고, 동창회 명부나 어떠한 기록에도 연락처 남기는 것을 금기시했다. 심지어 아내조차 사정이 있겠거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급여도 OO회사 명의로 들어왔다. 

  그의 살아왔던 과정을 듣고 투명인간으로 사느라 연락하지 못했을 거랴 이해하게 되었다. 



   술자리 끝나고 헤어지면서 K는 ‘자주 만나세’ 하더니 명함을 주었다. 달랑 이름과 전화번호만 인쇄된 백지 명함이었다. 간간이 흘리는 내용을 되짚어 보며 K를 생각해 봤다. 몸에 밴 국가관이나 관리자 같은 점잖은 태도를 보아 고위 공직자로 퇴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특이한 것은 지나온 삶에 대하여 극도로 말을 아끼려고 한다는 점이다. 여행사 중국지사에서 몇 년 근무했다고 말한 것이 그가 일했다는 이력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투명 인간으로 살았던 과거를  묻어 두기 위한 위장 직업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 는 퇴직 후에도 지나온 삶을 잃어버려야 될 처지인 듯했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체화된 직업병(?) 탓에 본능적으로 지키려는 것 같았다. 

  다음에 그를 만난다면 청바지에 점퍼를 걸치고 학생 시절로 돌아가 막걸리 잔 앞에 두고 밤늦도록 현실을 비판하는 그를 보고 싶다. 새 옷을 입혀 투명 인간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겠다.(사진 LEE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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