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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주 Dec 17. 2022

백금술사(白金術師)

뇌 속에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단다. 누가 언제 어떻게 설치했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폭탄이다.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삶에 의욕을 잃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조차 무슨 의미가 있냐며 발코니에 홀로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뭘 잘못 했기에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냐며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우울증세를 보이고 어지럽다고 고통을 호소하기 한다. 혼자 외출하거나 산책가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시한폭탄이 있다는 사실은 어지럼증 검사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년 전부터 아내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앉았다 일어서거나 움직이면 빙빙 도는 것 같고, 물체가 움직이는 것 같은 증상이 있었다. 나이 들어 그런가보다, 좋아지려니 믿고 몇 달을 지냈다. 머릿속에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겁이 나서 병원 가길 차일피일 미루었다. 

  이석증 이야기를 듣고 동네 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았다. 젊고 잘 생긴 의사는 편하게 대해주었다. 나이 들면 질병도 함께 찾아오는 건 당연한 거라며 받아들이고 치료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위로한다. 어지럼증은 흔한 질병이고 원인과 종류도 많아 치료방법도 다양하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우선 안진 검사를 통해 이석증(양성 돌발성 체위변환성 어지러움) 여부를 확인했다. 꼼꼼한 의사는 두 번씩 같은 검사를 반복하더니 확실하게 이석증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혹 모르니 2차 진료기관에서 다른 검사를 받아보길 권했다. 이석증이라면 간단한 치료로 어지럼증이 해소될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큰 병원에서 진찰받아보라는 말에 불안감이 커졌다.      

  종합병원 어지럼증 센터에서 진료상담을 했더니 뇌 질환 정밀검사를 위해 MRI 촬영을 하자고 했다. 일주일 후 결과를 보러 갔다. 의사는 놀라지 말라며 아내를 진정시켰다. 뇌 속에 13 미리 정도 이상 물체가 발견되었단다. 아니길 바라고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이 되었다. 뇌 속 이상 물체가 발견되어 어지럼증 치료는 관심 밖 질환으로 무시되었다. 

  어지럼증세는 이것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며 뇌 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몰라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시한폭탄을 뇌 속에 놔두고 살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시한폭탄 제거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그들은 예약 대기만 다섯 달은 기다려야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 빠른 제거가 필수 요건인데 순번 기다리다 폭발할 상황이다. 급한 마음에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믿기 어려워 다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만난 전문가는 프로필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붉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흰색 가운을 입은 증명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예술가다운 오랜 숙련과 섬세할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그는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뇌 속 이상 물체는 ‘뇌동맥류’인데 크게 부풀어 오른 혈관 풍선이라 언제 터질지 몰라 시한폭탄이라 했다. 잠잘 때, 화장실 갔을 때, 화를 낼 때 누구도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만약 터진다면 치명적 결과로 나타난단다. 사망하거나 긴급하게 수술로 처치한다 해도 반신불수나 신경학적 장애 같은 후유증이 올 수 있어 사전제거가 필수라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아내의 폭탄은 고르게 부푼 풍선 모양이 아닌 약한 곳이 삐져나온 터지기 직전의 나쁜 형태라 더 위험한 상태라 당장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좀 더 지켜보고 조치하면 안 되겠냐? 는 아내의 말에 그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강한 어조로 “의사라면 이런 상태를 보고 미룰 수는 없어요. 당장에라도 터져 문제가 생길 것을 알면서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당장 입원하세요.”

  아내는 헐렁하고 꼬깃거린 환자복으로 갈아 있었다. 제거 방법은 위치에 따라 다르나 머리를 여는 개두술, 동맥류 견찰술,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하고 코일을 채우는 코일 색전술 등 몇 가지 방법이 있단다. 결정하기 위해 CT, MRI, 뇌혈관 조형술 같은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되었다. 아내는 뇌혈관 조형술 검사를 가장 힘들어했다. 먼저 감염 예방을 위해 사타구니 제모를 하고 오른쪽 허벅지 안쪽 대퇴동맥을 뚫고 동맥 속으로 가는 관을 삽입한다. 심장을 통과하여 병변 위치인 뇌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조형제를 투입하며 촬영한다. 

 문제는 검사 끝나고 동맥 지혈 과정이다. 뚫고 들어간 동맥 부위에 무거운 물체를 이용해 압박을 가하는 고통을 여섯 시간 정도 움직임 없이 버텨야 한다. 폭탄 제거는 코일 색전술 방법으로 결정되었다.      



  작은 체구였던 의사는 시술 당일 커다란 산과 같은 듬직함이 어깨에서 보였다. 그에게 아내의 모든 것을 맡겨놓고 기대할 수밖에 없는 내 존재가 미미하게 느껴졌다. 첫인상처럼 그의 예술가다운 섬세한 솜씨로 시한폭탄을 제거해 주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수술실 들어가는 아내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게 해달라고 수년 전부터 빌었었다. 제왕절개, 자궁근종 수술까지 받았던 아내는 병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다 했다. 침대에 눕혀져 수술실 입구에 들어설 때 강한 찬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는 순간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소독을 위한 거라지만 찬기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공포심이 더했다. 포기한 채 수술실에 들어서는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목소리가 끝까지 나오질 않았다.

  의사는 현미경 관찰을 하면서 대퇴동맥 속으로 유도관을 삽입하고 그 속으로 다시 미세 도관을 삽입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간 이백오십 회 이상 시술한 신의 솜씨라 해도 긴장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유도관이 구불구불한 혈관을 통과하며 혈관 천공이 발생하지 않을까.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금씩 밀어 넣는 순간은 노안으로 바늘귀 꿰는 어머니의 집중력과 같을 거였다. 한 번의 실수가 생명과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그렇다. 병변 위치까지 유도관 삽입이 끝나면 본격적인 안전조치에 착수할 차례다. 솜털 같은 백금 실을 부풀 때로 부푼 뇌동맥 속에 피 한 방울 스며들지 못하도록 채워 넣는 백금술사(白金術師)의 솜씨를 발휘할 차례다. 오랜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위험한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긴장 속에 진행되었다. 



  수술실 벽에 걸린 시계는 고장 난 듯 느렸다. 두어 시간 지났을까? 의사는 푸른 수술복이 땀으로 범벅된 채 보호자를 불렀다. 백금 솜털 실로 꽈 채워진 일그러진 폭탄 모습을 삼차원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이젠 터지지 않도록 완벽하게 조치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다만 ‘고○○’ 씨를 조심하라고 했다. 오랫동안 붙어 다니며 괴롭히던 녀석이 폭탄설치 범인인 듯했다. 건강을 너무 자신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이 들어 한 번쯤 뇌 MRI를 찍어 봤더라면 시한폭탄의 위험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었을 텐데…!      


   프로필 사진의 빨간 나비넥타이가 멋져 보였다.(사진 lee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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