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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비 Sep 28. 2022

여자 혼자 캠핑합니다 2

DAY5 안동 하회마을에서 발견한 것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외진 곳으로 왔다.

낙동강 일몰을 바라보며 캠핑 할 요량이었는데 도착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약간의 자연과 함께하는 낭만을 기대했지만 너무 자연적인 나머지 온갖 모기와 풀벌레들이 나를 반겼다. 할 수 없지 뭐. 어두워지기 전 재빨리 텐트를 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바스락-바스락- 분명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풀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제법 신경을 건드린다. 무서운 생각하지 말자- 되뇌일수록 왜 공포영화들이 떠오르는지.

물귀신이며 연쇄살인범이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밖에 뭐가 있던 내가 먼저 나가서 기선제압을 해야겠다! 라는 어이없는 생각으로 문을(지퍼달린 천쪼가리)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웬걸 아무것도 없다. (사실 아무것도/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한 장소)

근데 왜 소리가 계속 들리는거지? 약간의 오기와 함께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알고보니 낙엽 떨어지는 소리. 낙엽이 쉴새없이 떨어지면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말 가을이 왔나보네- 생각하고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한동안 해가 쨍쨍한 날씨였는데 오랜만에 구름도 잔뜩 끼고 쌀쌀한 날이다. 뒤숭숭했던 꿈자리와 함께 개운치 않은 날의 시작이다.

여행한지 5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쉬고 싶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안동에 왔으니 하회마을은 보고 가야지- 귓가에서 안동관광센터 공무원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아 꾸역꾸역 마을로 향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으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영화 ‘한산’ 관람하고 이순신 덕질할 때 이순신 친구 류성룡으로 기억하고 있음)

아직까지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마을 내 한옥들은 모두 관광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애정과 노력에 의해 보존된 고택들이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명 관광지답게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여행 온 중장년층이 많았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학교 놀토 끝나고 집 가던 학생들처럼 꺄르르-웃었다.

그 중 한 명은 “우리 같이 오니까 너무 좋다~ 내년에는 하회마을에서 한달살이 하고 같이 살자” 며 즐거워했다. 단체사진 찍을 때는 내게 카메라를 주면서 예쁘고 길쭉하게 찍어 달라고도 했다.

하나, 둘, 셋 하하하~ 모두들 소리내어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같이 웃었다. 그들의 행복한 나들이가 카메라에 잘 담기기 바라며 열과 성을 다해 사진 찍어드렸다.



나도 언젠가 이 곳에 다시 오면 누군가와 함께일 수 있을까?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해왔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도 어짜피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에 자주 무시했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친구들 중 연락하는 친구도 거의 없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한 명은 내 소셜미디어에 정기적으로 댓글을 달지만 나는 한 번도 답장한 적이 없다.

왜 나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갈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내 자신을 고립시키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외롭고 혼자라고 말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지도 않다. 먼저 연락해서 안부 묻기를 개의치 않는 사람, 밥 한끼 하자고 말하고는 정말 밥을 함께 먹기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 생일을 까먹지 않고 소소하게 선물을 챙겨주는 사람.

모두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망가지지 않고 보존된 하회마을의 고택들에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마다 마루를 닦고, 앞마당을 쓸고, 망가진 곳을 수리하는 이 곳 사람들의 애정이 없다면 유지되지 못했을 하회마을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노력을 귀찮게 여기지 않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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