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글쓰기'가 생각보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고 글을 썼더니 생각처럼 글을 쓰기가 쉽지 않고, 글 쓰려고 끙끙 거리다 보면 오히려 세상과 멀어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는 분이 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노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글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면 문제가 아닐까? 내 생각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먼저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보자.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하려면 당연히 하기 힘들 것이다. 특별히 직업 상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빼고는 일상에서 일기조차 쓰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렇게 수 십 년을 지내 왔는데 갑자기 글쓰기 운운하니까 당황스러운 느낌조차 들 수 있다. "누가 글쓰기 좋은 것 모르는가? 정작 쓸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글쓰기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요즘 당구장이 활황이라고 한다. 당구가 스포츠로 인식이 돼서 케이블 티브에 늘 선수들 시합이 나오고, 5-60 세대들은 아예 동문모임이나 기타 모임들을 당구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막상 당구를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아침에 되는가? 초보자가 한 번 게임에 참가하려 해도 재미 없다고 끼지도 못하게 한다. 젊은 시절 배우려 할 때는 혼자서 연습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 먹어서 똑 같이 그런 짓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처음 호기심 갖고 달라 붙었다가 몇 번 당구장에 드나들다가 낭패감을 느끼고는 그만 두는 경우들이 많다. 이럴 때 늘 나오는 이야기가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다. "저건 나하고 맞지 않아. 공연히 시간과 돈만 뺐길 뿐이야!"
당구 뿐만 아니라 모든 새로운 것을 것을 배울 때 똑 같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그러면 이럴 때 어떡할 것인가? 대기업을 은퇴한 내 친구는 아예 당구 교습을 정기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이 때는 돈도 들어가고 규칙적으로 시간도 할애해야 한다. 정기 교습을 받으면 비교적 빠른 시간에 당구 수를 올릴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모든 일에도 똑 같이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당구 교습에는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데 책 읽기나 글쓰기 같은 정신적 교육에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 있다. 이런 일들은 그저 저절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든지 공짜로 습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심리가 있다면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책 읽기나 글 쓰기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 일도 그만큼 필요를 느끼고 가치를 부여할 때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투자를 할 때 다른 어떤 일보다 행복한 삶을 반대 급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글쓰기가 오히려 고독을 자초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자. 사실 글은 다른 운동들처럼 함께 하기가 쉽지가 않다. 글은 생각을 해야 하는 데 함께 생각을 하기는 쉽지가 않다. 다만 글을 쓰기 위한 시도로서 학습을 할 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생각도 서로 간에 공감을 할 수가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글쓰기가 고독을 유발한다는 주장 보다는 오히려 적절한 방법을 구사할 때 오히려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 자체는 혼자 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생각은 나만이 하는 것이고, 남이 대신해줄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상상하는 것, 내가 사고하는 것은 모두가 나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고독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형도의 시 <빈집>은 이런 구구절절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문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 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런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일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늘 수가 없다. 이런 고통은 일정한 고독을 유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독과 고통을 경험할 수 있수록 나의 내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생각을 깊이 하다 보면 내 안의 생각, 나만의 욕망, 나만의 세계라는 것이 화엄의 인드라 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그만큼 나 밖의 가족, 나 밖의 친구들, 나 밖의 사회와 세상 사람들과의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더 확인할 수가 있다. 때문에 글쓰기가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유리시킨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가 있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일을 하든지 비슷한 체험을 할 수가 있다. 나는 이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좋은 습관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일정한 행동의 패턴과 관성이 생기고 그것이 습관을 만든다. 술 담배 피는 것도 습관이고, 운동하는 것도 습관이고,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는 것도 습관이고,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다. 나쁜 습관을 지니면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좋은 습관을 지니면 주변에서 말려도 계속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습관은 결코 한 두 번의 행동으로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봄 날에 제비가 한 마리 날아 왔다고 해서 여름이 되지 않는" 이치와 똑 같다. 여름으로 가는 중간에는 다시 겨울의 찬바람이 몰아칠 수 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꾸준히 반복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글쓰기는 다른 어떤 일보다 장점이 많다. 글 쓰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정신 세계를 더 잘 이해를 해서 삶의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고, 나 밖의 타자들의 욕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국 사회가 가진 완고한 진영 논리는 당췌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기인하는 점도 많다. 생각을 하고, 더욱이 그것을 글로 표현하다 보면 언제는 자기의 한계를 알게 되고, 타자도 이해하게 된다. 이제 한국인들도 스스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