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소재
글을 쓸 때 글의 소재 역할도 크다. 앞서 나는 자신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소재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잘 알 수록 글을 쓰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초보 운전자가 처음부터 난 코스를 택하면 운전에 대한 두려움만 키울 수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렇게 주변의 잘 아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묘사를 하다 보면 글쓰기에 요령이 붙는다. 그러면 차츰 차츰 운전에서 거리를 넓혀 가듯, 글쓰기도 소재를 다양화할 수 있다. 주변의 일상적인 것에서 잘 모르는 소재로 확장할 수 있고, 구체적인 소재에서 추상적인 소재로 넓혀 갈 수 있다. 이렇게 확장을 하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일단 초보 딱지를 어느 정도 떼게 되면 어떤 소재를 대상으로 글쓰기를 할 수가 있을까? 현대인은 그 이전 시대의 다른 어떤 인간들보다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전 시대인들이 평생 배워야 할 것을 아주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고, 전 시대인들이 평생 경험하기 힘든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과 전 시대인들이 대하는 시간과 공간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공간 역시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전시대인들 보다 훨씬 압축적으로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글의 소재를 다양하고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예전에는 시나 소설 혹은 여러가지 책들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경우들이 많았다. 책을 읽기도 쉽지 않은 데 독후감을 쓰려면 보통 부지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내용이 다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의 내용을 좀 더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고, 나중에 기억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책을 많이 읽었을 뿐 아니라 독후감도 많이 썼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지적 성장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 읽기를 과거와 달리 요즘 학생들은 잘 하지 않는다. 이는 나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도서 판매량이나 대출량 등의 객관적인 지표 상으로도 드러난다. 여기에는 과거와 달리 지식이나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매체들이 다양해진 탓도 크다. 당장 스마트 폰을 달고 다니는 학생들은 모든 정보를 스마트 폰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 다음에는 태블릿이나 노트북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기기들은 PDF나 ePub 등의 전자 문서를 읽는 데 유리하다. 이조차 학습에 사용하는 이상으로 음악이나 영화 보기 혹은 게임 등에 더 많이 활용된다. 말하자면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책을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 자체를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것도 좋다. 글쓰기의 소재를 억지로 발굴하기 보다는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과 관련시켜 한다면 그만큼 글쓰기의 소재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음악이나 게임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관심과 지식이 쌓이면 그런 것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글을 전문적으로 쓸 수도 있다.
현대인들은 영화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이 본다. 예전에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영화는 명절 날이나 학교에서의 단체 관람 같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1년에 서너 편도 영화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너침고 있다. 케이블 TV나 넷플릭스 같은 경우는 24시간 내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그리고 디지탈 시대라 음성적으로 영화 파일을 구해서 보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영화 관람을 과거 책을 읽고 난 후 독후감 쓰는 리뷰(Review)를 써보면 어떨까? 영화는 그 자체가 단단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은 좋은 소설 한 편 읽는 것 못지 않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리뷰를 쓰다 보면 영화에 대한 관찰력이 높아지고, 영화를 분석적이고도 종합적으로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만큼 좋은 글쓰기 대상이 없다고 본다.
내가 아는 선생 한 분은 독일 유학을 갔을 때 독일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공부는 전문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음악을 좋아한 아마추어 입장에서 한 것이었다. 그 선생은 음악회를 갈 때 반드시 연주되는 곡을 미리 구해서 들어보고 관련 서적들을 통해 정보를 얻은 다음 갔고, 음악회를 다녀와서는 반드시 그 느낌이나 감상평 등을 카드에 적었다고 한다. 그런 방식을 오래 진행하다 보니 나중에는 카드가 상당히 쌓여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그 선생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아마추어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지역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음악을 예로 들었지만 감상이나 리뷰 작성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