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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Sep 09. 2024

존재론과 인식론


내가 돈오 점수 논쟁을 존재론적으로 접근할 것인가 아니면 인식론적으로 접근할 것인가로 분류한 방식의 실용적 효과가 상당히 큰 편이다. 사실 이것은 양대 선맥의 오랜 논쟁이 무의미한 짓거리일 수 있음을 시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런 논쟁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처럼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존재론적 접근은 본질이나 본체 혹은 이데아나 신 같은 절대자 등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경험 여부에 따라 그 존재를 확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존재론은 데카르트가 인식론적 혁명을 일으키기 전의 고대 존재론이 대체로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존재론의 약점은 그것의 존재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파이돈>이라는 작품에서 소크라테스가 이데아의 낙원 세계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설명했다가 나중에 '나도 그곳에 가본 것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이다'라고 했을 때 소크라테스의 존재론적 확신은 전혀 의미가 없어질 수 밖에 없다.


반면 인식론적 접근은 대상 X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따지거나 시행 착오에 따른 그것에 대한 점진적 인식의 확장이다. 전자의 경우는 칸트가 대표적이고, 후자의 경우는 K. 포퍼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우리의 인식은 자기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비판하고 한계를 돌파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X에 대한 인식의 개명이나 확장 혹은 심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굳이 X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도 없다. X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견해나 관점의 차이만이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접근은 전형적인 근대의 방식이고, 포스트 모던에서 더욱 피크를 이루고 있다.


이 두 가지 접근 방법은 각기 장 단점이 있다. 존재론적 접근은 독단(Dogma)에 질 수 있는 반면, 인식론적 접근은 회의주의 혹은 상대주의(Sceptialism/Relationalism)에 빠질 수 있다. 이 두 가지 접근이 갖는 딜레마를 피하고자 한다면 칸트 처럼 영역을 구분하고 디멘젼을 달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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