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출간될 나의 책 <철학은 반란이다!>의 초교를 보고 있는데, 이 책의 글들을 쓸 때와 지금 다시 볼 때의 시차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큰 차이는 아니고 간간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경우이다. 남여가 만나서 처음 사랑할 때는 강렬한 파토스가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약효가 떨어지면 과거처럼 더는 감정에만 매달릴 수 없다. 그 이후에는 인간적인 정이나 신뢰 혹은 믿음 등 둘 사이를 엮어주는 다른 감정들이나 가치들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상대를 파악하는 느낌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확실히 처음 글을 쓸 때의 감정은 강하게 느껴진다. 논쟁적으로 글을 쓰는 나의 경우는 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글이 강렬한 파토스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면 글의 생명력도 짧아질 수 밖에 없다. 남녀 간의 관계를 지속시켜 줄 수 있는 다른 감정이나 가치 등이 필요하듯, 글의 경우에도 강렬한 감정 이외에 글의 내용과 깊이 그리고 통찰 등 글의 지속성을 유지해주는 다른 가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가치들은 인간 삶의 다른 모든 곳에서도 요구된다. 지금처럼 대선을 앞두고 격렬한 선거 운동이 벌어질 때는 자기가 지지하는 특정한 후보나 당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후보나 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다른 가치들, 후보의 인간적 가치나 정치적 비젼, 당의 강령과 정책 등의 현실성 지속성 등등 보다 다양한 가치들이 후보와 당 그리고 지지자들을 묶어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약이다"는 말은 시간이 새로이 장단점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보완해주며, 또 그 관계를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준다는 의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