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놀이터 놀이기구에 낙서를 해놨다. 아마 두 아이의 각자의 낙서인 듯하다. 20년 뒤에 너는 누구야?라는 귀여운 낙서가 되어있었다.
두 아이중 하나는 웹툰작가가 꿈인 모양이다. 나도 한때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예전에는 동네에 만화방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정의 돈을 내고 만화책을 즐겨보곤 했다. 그리고 월간으로 두꺼운 만화종합잡지가 발행되어 매달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한때는 나도 만화가를 꿈꿔서 만화종합잡지에 연재된 만화주인공들을 공책이나 스케치북에 꽤나 그리곤 했다.
주로 꺼벙이나 울지 않는 독고탁, 혹은 떠돌이까치를 많이 그렸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이 캐릭터의 이름을 잘 모르실 수도 있다. 지금의 강풀이나 기안84 이상으로 유명한 만화가의 주인공들이다.
나도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만화방 문턱이 닿도록 다녔다. 어쩔 때는 그림을 너무 따라 그리고 싶어서 주인아저씨 몰래 만화책을 찢어서 가져오곤 했다. 하지 말었어야 했을 몹쓸 짓이었다. 내 다음으로 읽었을 누군가와 그리고 주인아저씨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화가가 되지 못했다.
왜 되지 못했을까?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당당히 밝히지 못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장래희망을 발표할 때도 남들이 가장 많이 희망한 과학자라고 했다. 과학은 일도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왜 떳떳하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시절 만화가는 지금의 웹툰작가에 비하면 세상에서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내가 만화가라고 하면 누군가 비웃을 것 같아서 그냥 무난한 과학자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당당히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남들에게도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애가 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내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학교 갔다 오면 집에는 늘 아무도 없었다. 어쩌다 친구집에 놀러 가면 그 친구엄마가 집에 있는 것이 참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저녁 늦게 해가 지면 들어오는데...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숙제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해는 좀처럼 지지 않았다. 해가 져야 엄마가 오는데... 밖이 어스름해지면 난 엄마가 돌아오는 언덕에서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앉으면 저만치 언덕 끝에서 양손 까만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면서 오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나곤 했다.
힘겹게 삶을 살아가시는 엄마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도 늘 안쓰러웠던 같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뭔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생활 외에 다른 과외나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어린 시절 습관이 지금까지도 뭔가를 결정할 때 영향을 미친다. 최선보다 현실성에 맞는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왜 정말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했을까? 가고 싶었지만 그 길을 선택함으로 오게 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젠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현실성 없는 무모한 꿈을 말하기 더 어려운 나이가 된 것이다. 만약 이야기한다면 더 많은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큰아들이 작년에 갑자기 성악을 해서 대학을 가겠다고 레슨을 받게 해달라고 했다. 고2 때 성악을 해서 대학을 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레슨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그런 그 녀석의 당당한 요구가 정말 부러웠다. 나는 내 부모에게 저렇게 당당히 요구한 적이 없었는데 어쩜 저리 한치의 미안함 없이 대나무처럼 꼿꼿할까? 아주 당연한 요구 였고 지금까지 그 요구를 허리가 휘도록 들어주고 있다. 제발 내년에 재수 없이 진학했으면 좋겠다.
뭘 당당히 요구해 본 적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아들의 당당한 요구는 솔직히 참 부러웠다. 그 꿈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없다. 남이 원하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참 아름다운 여정이다. 난 지금 그 여정을 글쓰기로 시작했다. 작은 한 걸음을 내 딛고 있지만 잘 걸어가 볼 생각이다. 그리고 놀이터에 적혀있던 그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