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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선 Oct 27. 2024

 한강 소설 <흰> 다시 읽기와 나의 글쓰기 마감기

한강 소설 <흰>을 다시 읽었다.  소설이지만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느낌.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도록 해주었다.

작가흰색이라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로 소설을 이어나간다.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이.

참 재미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면 충분히 가능한 도전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 속의 작자는 낯선 외국의 어디선가 글을 쓰는 작가이다. 한강 작가의 자신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글을 쓰는 도시는 예전에 독일군에게 공격을 받아 전체도시의 95퍼센트가 폐허 되었던 곳이었다. 그 당시  공격받은 도시를 항공기가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모두가 파괴되어 버린 도시의 색깔이 흰색으로 찍혀있었다. 철저히 짓밟혀 버린 그 도시의 참담한 과거의 모습이었다. 


그 도시가 어디일까 검색을 해보니 아마도 폴란드의 바르샤바 것 같다. 1944년 9월에 독일군에 침략당했던 폴란드 바르샤바 민중들의 힘으로 독일군을 그 도시에서 몰아냈다. 화가 난 히틀러는 저항세력의 본보기 삼아 이 도시의 전부를 폐허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바르샤바 사람들은 폭격을 맞아 무너진 진 건물 위에 연결하여 새 건물지으므로 그때의 참혹함을 후대에게 기억을 남겨주었다.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전하기 위해서. 작가는 이러한 애도의 방식을 자신의 묻어 두었던 기억에 적용한다. 그렇게 흰색으로 연결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꺼내어 잊지 않으려는 애도의 방식을 선택한다.


<흰>에 나오는 흰색은 삶의 시작과 끝에 맞이하는 색깔이다.

태어나서 배냇옷과 죽을 때 수의 모두 다. 결국 같은 흰색의 옷을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입는다. 그래서 흰색은 한 인생의 색깔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를 그렇게 처음에 흰색으로 시작하지만 그 바탕 위에 원치 않는 덧칠이 되고 나중에는 무슨 색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그냥 주변색에 반응하는 카멜레온같이. 


나는 어린 시절 하얀 도화지를 참 좋아했다. 아무것이나 상상해도 좋다는 무한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얀 도화지를 내밀면 막막해진다.


 내 안에 갇혀버린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리고 그 막막한 흰색 앞에서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기가 민망하다. 내 안에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보일까 두렵다. 요즘 내가 글쓰기를 대할 때 드는 감정이다.


막막함.


소설 <흰>에서 이러한 막막한 글쓰기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자신 안에서 나오는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그것이 문장이 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문질러가며 그렇게 똑똑 떨어지는 고통의 진액으로 문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심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작가가 심장으로 쓴 글은 독자의 심장으로 전달된다. 같은 심박수로 움직이며 작가와 동일한 호흡으로 글 속의 숲을 걸어가게 된다.


나는 이제 겨우 2편을 글을 발행했다. 감사하게도 라이킷을 해주신 분들이 있다. 처음에 인턴작가가 되면서 3편의 글을 발행하는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그동안 저장글에 있던 내 일기 같은 이야기들을 올리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그 저장글을 다시 읽어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신선도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과거의 내 글인데 지금의 내가 공감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한강 작가 소설들을 다시 읽고 그것으로 글을 써보자 기획을 해봤는데, 찾아보니 모래알만큼 많은 분들이 이미 비슷한 글들을 올리셨다. 그렇게 되다 보니 무슨 글을 쓸지 방향을 잃었다. 비슷한 내용의 내 글을 누가 읽어줄까 싶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지막 마감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어쩔수 없이 그냥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한강 작가의 소설 다시읽고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다. 수많은 한강작가에 대한 글들이 존재하지만 그런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글을 쓰다는 사실이다. 지금 그것 외에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글을 쓰게 되면 당연히 내 안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보게 된다. 여러 가지 결핍의 모습부터 보인다. 특히나 칭찬결핍이 심하다. 참 칭찬받고 싶다. 이미 2편의 발행된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신 분들이 있으시다.  그 라이킷이  내 칭찬결핍을 채워줘서 참 감사했다. 글도 참 잘 쓰시는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3번째 글이 발행되면 정식작가가 된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시원한 생수 한 병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목마른 영혼을 잠시라도 회복시켜 줄 그런 글. 이제 겨우 글 3편 발행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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