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읽으면 시간순삭
올해 3월 말부터 매일 조금씩 하루 일과를 적고 있다. 나도 처음 쓸 때만 해도 이 짓이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이어진 게 놀랍다. 학생 땐 죽어도 쓰기 싫던 일기가 이제는 습관처럼 자리 잡혀서 쓰기 귀찮아도 억지로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시키지도, 돈을 주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데!
자칭 게으름 킹인 내가! 습관의 힘이 이렇게나 무섭다.
첫 시작은 고등학생 때 매일연재를 꿈꾸다 일주일 못 가 때려치운 일기였다. 네이버 메모장에 썼는데, 그날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행했던 모든 일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글이었다. 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루에 했다고? 못 미더울 정도로 뭔가 한 게 많았다. 대단한 건 아니고 아침에 집 근처 산에 올라갔다가, 점심엔 학원에서 선생님한테 숙제 안 했다고 혼나고, 저녁에 엄마랑 장을 봤다.라는 식의 단순한 일정이었다.
그걸 그 당시의 내 감정과 상황묘사를 상세하게 써놓으니까 길게 느껴진 것이고.
나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연중무휴 24시간을 붙어 있는 나의 마음을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왜인지 중독되기도 하고.
아무튼 매일연재를 꿈꾸며 몇 번 시도를 했지만 도중에 실패했던 수많은 나날들. 그날들이 이제야 빛을 발해 한 달 반을 일기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일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가 미래의 내가 보기 위해서이다. 미래에 심심하면 콘텐츠로 볼 비축식량을 쌓아놓는 느낌.
그래서 상세하게 쓰거나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요즘엔 재미를 좀 더 추구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게으름에 못 이겨 도저히 못 쓸 것 같은 날엔 딱 그날의 강렬한 생각 한 마디만 메모하는 것이다.
"막국수랑 맨 밥은 상성이 안 맞는다. 우웩."
정갈하게 쓴 일기들 사이에 혼자 단정치 못한 글은 재미를 이끈다.
물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좋은 것은 누가 나한테 콘텐츠를 떠먹여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대신 하루를 기억하고 일기를 써주면 좋겠다.
...아 일기 쓰기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