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어가 주는 마법
설거지가 싱크대에 가득 차 있다. 꼬리꼬리한 냄새가 폴폴 올라오고, 그릇에 붙은 찌꺼기가 나와 아이컨텍을 시도한다. 개 드럽다. 근데 진심으로 하기 싫다.
귀찮아...
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한다는 선택지는 내 사전에 없다. 이왕 하는 거 한 번에 딱 하고 마는 게 시간적으로나 기분적으로나 나으니까. 오랫동안 산을 쌓아놓고 못 본 척 외면하는 게 문제지.
설거지만 귀찮냐? 으음 절대. 나는 씻는 것도 귀찮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 묻히는 건 괜찮다. 그전에 옷을 홀딱 벗고 씻겠다 마음먹는 게 문제다.
내 일상은 문제 투성이다.
"그냥 해라."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냥이 안 되는 걸 어떡하나. 난 생각 없이 행동을 못 하는 사람인 걸. 이걸 하겠다 다짐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 왈카닥인 기분파 놈을 설득하지 않으면 행동에 못 옮긴다.
습관적인 행동은 대화 없이 하지만, 그 외에 일은 기분파와 협상을 해야만 할 수 있다. 버릇을 잘못 들였다.
어느 날은 이런 나를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생각의 전환을 시도했다.
"... 이거 그냥 10분이면 다 끝난다."
"10분 아낀다고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 안 함."
이 생각이 의외로 설득하는 데 잘 먹힌다. 구체적인 시간이 제시되니 믿음이 간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 방법을 이용해서 설거지는 좀 수월하게 해결한다.
근데 씻는 건 아직도 거부감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