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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열 May 10. 2024

개떡인데 예의 바른 개떡

말은 불완전한 소통


서비스가 계속되면 그게 메뉴지...



역 근처에 생긴 타코야끼 가게. 생긴 지는 1년이 넘었지만 거기서 사 먹은 것은 올해 3월부터이다. 타코야끼를 좋아하는 내가 왜 그랬을까? 그건 바로 괘씸함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학교 앞 타코야끼 집은 8알에 3,000원 정도인데, 여기는 7알에 4,000원부터 시작이다. 


흠. 저기 코 흘리고 다니는 유치원생 아깽이한테 물어봐도 어디가 더 가성비 있는지는 유창하게 답해줄 것이다. 


아니 근데 7알은 왜 7알일까? 직사각형의 작은 상자에 담아주는 것인데 홀수면 모양새도 안 예쁘고, 반반으로 담아달라고 했을 때 4알, 3알의 구분은 또 어떻게 할 것이고... 되게 요상하게도 판다는 생각을 했다. 에잇, 내 자존심이 상하지 여긴 절대 안 먹어. 유동인구 많은 곳에 낸 가게에 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더랬다.


그런데 밤에 그 앞을 지나가면 일본등에서 나오는 붉은빛과, 흘러나오는 지브리 브금이 여간 나를 유혹하는 게 아니었다. 깜깜한 밤에 지나가면 그 가게만 반짝이를 발라놓은 듯 눈에 확 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칙칙 기계에서 굴려지는 타코야끼의 익는 소리가 일본 야시장 거리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아무리 외면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한 나도 결국은 그 기세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 요상한 타코야끼를 한 번은 먹어봐야겠다. 패잔병의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기본맛하고 치즈맛 반반으로 7알 주세요..."


말하면서도 7알을 반반으로 달라는 게 참으로 진상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2인분 같은 1인분 주세요 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애교 부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달까. 


어떤 걸 3알과 4알로 나눌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주문만 받으시는 직원분에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뭐여. 직원분 맘대로 담는 건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포장된 상자를 주시면서 마지막으로 직원분은 놀라운 한마디를 남기셨다.



"한알은 서비스입니다!"


오...


왜인지 두 배가 된 패배감을 느낀 채로 집에 가 한알을 왕 베어 물어봤다. 바삭거리는 겉반죽과 통실통실 한 알가득 찬 문어조각. 8알에 4,000원인 가격이 이해가 가는 맛과 크기였다. 


그렇게 매번 7알이 8알이 되는 마법을 보여주는 타코야끼 가게는 내 단골 집이 되었다.




"칠곱알 주세요."



한 달에 두세 번은 포장해 가는 타코야끼. 저번에는 무려 4,500원이나 되는 갈릭버터와 매콤치즈 반반을 시켰다. 소스맛이 아주 강해 미각이 마비되는 듯했다. 자극적이라 맛은 끝내줬다.


이번엔 순정인 기본, 치즈 반반으로 포장을 해야지. 지하철 역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나는 언제나 변치 않는 순정파였다.


그렇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나는 당당하게 직원분에게 말했다.


"기본하고 치즈맛 반반으로 칠곱알주세요."


"... 네에~일곱 알 주문받았습니다."


무표정으로 카드를 돌려받으며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음. 저기 헥헥거리는 강아지가 참 귀엽군. 역 안으로 전력질주하는 저 여고생은 어디 늦기라도 했나 보지? 하하 다들 생기가 넘치는구나.


나는 삐질삐질 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모르쇠 하고 필사적으로 다른 곳을 쳐다봤다. 느끼는 창피함이 더 컸으면 하다 하다 휘파람까지 부르려 했지만 다행히 그 지경까진 가지 않았다.


이 개떡 같은 말의 내막은 예의를 차리려다 저지른 실수라는 것이었다. 칠 알 주세요.라고 주문하려 했다. 근데 칠까지 말하는데 뭔가 반말로 툭 내뱉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칠 알이 잘못말하면 ㅈㄹ로 들릴 수도 있고...)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노파심에 일곱 알 주세요라고 바꾸려 했다.


근데 이미 칠을 내뱉은 상황에서 일곱을 말하려니까 그게 혀가 꼬여서 칠곱알 주세요라는 망측한 주문이 생겨버렸다. 나는 말을 끝내고 속으로 멈칫, 직원분은 듣고서 잠깐 흠칫. 


뭐... 뒷목이 서늘해지는 기분도 시간이 지나니까 잊히긴 했다. 여전히 칠곱알의 타코야끼는 여덟 알의 맛과 양을 책임지고 있었다. 존맛이었다는 뜻이다. 


잠깐의 부끄러움이 이렇게 소재를 만들어내니 오히려 내가 혀와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일 수 있다.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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