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널 처음 만난 순간

똑 닮은 "땡칠이와 토미"

by 정하나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꽤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모 아니면 도.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좋아하는거 아니면 싫어하는거. 만남과 이별. 그리고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과 안키워본 사람. 내 나이 35살. 내가 살아 온 인생의 처음 마주한 이별은 인생의 반을 함께했던 강아지 '땡칠이'와의 이별이였다.


땡칠이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오빠가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데리고 온 강아지이다. 정말 개가 아닌 인생 30일 차 태어난지 얼마안된 새끼 강아지를 데려왔다. 새끼였던 땡칠이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불독처럼 생긴 내 기준에서는 못생긴 땡칠이와의 첫 만남이였다.


자글자글한 불독도 나름의 귀여움이 있지만 나의 주관적 시선에서 땡칠이는 마냥 귀엽기에는 좀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이름도 예쁘게 지어주지 않았고 우리가 아는 '영구와 땡칠이'라는 이름에서 땡칠이라고 이름을 지어버렸다. 못생겨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던 땡칠이는 아쉬운 대상이 아니였다.


맞벌이 부모를 두었던 오빠와 나의 삶 속에서 집 안에 고요하고 적막함으로 아쉬웠던 공간을 채워주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린시절부터 십 대 그리고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될때까지 우리와 함께한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그런 땡칠이와의 이별은 나의 인생 속에서 애착을 가진 대상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공허한 감정을 처음 느끼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정해진 시간을 두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은 무어라 정리할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 사람이 아닌 개가 죽은 걸로 무슨 이별을 정의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친구의 존재는 삭막했던 우리 집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서로 대화가 오고 가게 만들어주는 기쁨이었고 집에서 항상 사람들을 환대해 주는 존재였다.


그런 땡칠이와 이별은 마음 한 구석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그 마주하는 공허함을 견디는 하루하루는 참 힘들었다. 나보다 큰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오빠는 그 공허한 슬픔 앞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매일매일 다가오는 슬픔을 술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고, 그 그리움은 유기견 사이트에서 떠나간 땡칠이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땡칠이를 찾았다.

P20161119_145524000_F9792069-4E07-4AC2-B8B7-509CC8C539D3.PNG 널 처음 본 순간

녹내장과 백내장으로 흐린 눈빛을 가졌던 땡칠이의 눈빛과는 다르지만 눈빛 빼고 모든 것이 닮아 있던 강아지였다. 강아지 펜슬 너머로 여러 마리 강아지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 개들 사이에서 조금한 녀석이 정 가운데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카메라를 쳐다고 있다.


오빠는 땡칠이를 다시 만난 것처럼, 이 친구를 바라보았고 나 또한 땡칠이와 똑 닮은 이 친구가 보고 싶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람 많은 토요일에 이태원을 찾아갔다. 실제로 보니 조금은 다르지만 정말 많이 닮아 있는 강아지였다. 어떠한 사연으로 너는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점점 추워지는 겨울이 되기 전에 따뜻한 우리 집으로 데려와야겠단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유기견 '토미'를 입양하게 되었다.


입양 절차가 끝나고 나면 정해진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집으로 갈 수 있게 해준다. 마침 그 동물병원은 땡칠이가 다녔던 동물병원이라서 너무 신기했었다. 동물병원에서는 토미를 3~4살 사이로 추정해 주었고, 전자칩도 잘 인식되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토미는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11월이라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토미와의 만남은 참 따뜻했었다. 하지만 이 따스했던 첫 만남은 그렇게 오래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토미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강아지도 처음부터 자기의 성격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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