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잊은 아이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엄마의 숨
'나이'를 잃은 아이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엄마의 숨,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연대기
아이의 숨이 먼저 흔들린다
그다음에야
내 숨이 따라온다
세상은 늘
나이부터 묻고 속도를 재촉한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자기만의 숨을 고르고 있다
나는 그 옆에 선다
앞서지 않고
끌지 않고, 같은 높이에서
엄마라는 이름이
나를 삼키려 할 때마다
나는 숨을 다시 세어 본다
이 아이의 세계가
너무 늦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너무 먼저 사라지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경계 위에 선다
아이의 숨과 내 숨이
서로를 놓치지 않게 하려고
큰 딸아이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우리 큰딸의 시간은 남들과 다르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스무 살을 훌쩍 넘겼지만, 세상이 정한 ‘성인’의 기준 앞에서 딸은 여전히 투명한 유리벽 안에 갇힌 아이처럼 보인다.
물리적인 나이테는 분명 늘어났는데, 딸의 눈빛과 행동은 여전히 세상의 복잡함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느낀다.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과의 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을.
어릴 때는 ‘조금 늦는 아이’로 여겨지던 행동들이,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이상한 행동’으로, 그리고 마침내 ‘문제 행동’으로 규정되기 시작한다.
주변의 시선도 달라진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움은 사라지고, ‘이제 다 큰 애가 왜 저러지?’라는 차가운 의문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이와의 고립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었다.
마트에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드러누웠을 때, 등 뒤에 꽂히던 수많은 시선들.
"저 애 왜 저래?"
차가운 눈빛들은 나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었다.
마치 온 세상이 나와 딸을 향해 '장애도(島)'라는 섬을 만들어 떼어내는 듯한 느낌.
그때 나는 아이를 재빨리 안아 올리는 것보다, 그 시선으로부터 숨기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나 자신에게 더 큰 죄책감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나'를 지키는 일은,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수용하고 세상과 맞서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딸과 버스를 탔던 날이었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딸은 갑자기 귀를 막고 작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정 소리에 대한 감각 과부하가 온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고, 한 어르신은 애를 제대로 단속해야지, 남한테 피해 주고 있냐며 나무랐다
" 죄송합니다.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소리에 민감해요."
그 순간 나는 딸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에 앞서, 딸을 감싸 안는 방어 자세도 취했다. 딸의 청각 과부하보다 늘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 것은 ‘한국 사회는 우리 가족을 이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서늘한 현실이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사회는 아이에게 ‘나이에 맞는 기준’을 강요했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아이는 세상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야 했다.
간절했던 탈출구: 해외 이주를 꿈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해외 이주를 간절히 꿈꿨었다. 한국 사회의 편견은 너무나 뿌리 깊고 날카로워서, 매일매일 우리 가족을 지치게 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이 조금만 튀어도 쏟아지는 날 선 시선들,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선을 긋는 무관심. 학교나 복지관에서조차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딸을 규정하고, 딸이 가진 잠재력이나 순수한 영혼은 보려 하지 않는 태도. 이 모든 것이 숨을 막히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큰 딸의 장애는 너무 심한 중증이라 어딜 가든, 특수 전문 교육 기관에서조차 선뜻 반기는 곳이 없었다.
망연자실.., 이곳에서는 딸이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절망감은 나를 해외 이주 정보 검색창으로 이끌었다. ‘장애인 복지가 잘 된 나라’, ‘편견이 적은 나라’라는 키워드를 입력할 때마다, 가슴 한편에는 딸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강박이 맴돌았다.
하지만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가족과 내 삶의 모든 뿌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로 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있었다.
결국 이주는 미뤄졌고, 나는 이 낯선 고립의 섬, 한국 사회에서 딸과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숱한 난관이 있었지만,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문제는 ‘편견 심한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해 스스로 움츠러드는 내 마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외부의 시선이 우리 가족을 고립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스스로를 ‘장애 가족’이라는 외딴섬에 가두며 방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차 한 잔의 위로 : '나'를 지켜내는 시간
딸의 보호자로서 나는 수많은 역할을 해왔다. 재활 치료사, 교육 전문가, 분노 조절자,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편견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방패. 그러나 이 역할이 길어질수록 나는 내 이름과 취향, 꿈을 가진 ‘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새벽, 잠시 화장실에 가려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초점 없는 눈빛과 늘 불안에 잠긴 표정. 그 얼굴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진 나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야 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만큼, 나를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무너지면 아이를 지켜줄 울타리도 함께 무너질 테니까.
나를 지키는 방법은 아주 사소했다. 딸이 잠든 후, 따뜻한 차 한잔을 내려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일.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거나, 이어폰으로 젊은 시절 좋아했던 밴드의 노래를 듣는 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딸의 엄마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는 않았지만 딸의 경과와 하루 소회를 정리하는 글쓰기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 물러나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감정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다시 채워지는 경험이었다. 고독한 헌신이 의미를 찾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갈 힘이 생기는 시간이었다.
편견의 벽에 균열을 내다: 세상과의 오해와 공존
해외 이주를 포기하고 한국에서 버티기로 결심한 뒤, 나는 태도를 바꾸었다. 더 이상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숨거나 방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딸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딸의 특성이 나타날 때마다 숨기려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먼저 상황을 설명했다. 딸아이는 중증 발달장애와 자폐 스펙트럼이 있어 소리에 민감하다고, 갑자기 울거나 소리를 내는 것은 말 한마디 못하는 인지기능 저하 아이만의 방식이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 작은 소통은 예상 밖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를 피해 다니던 이웃이 이해를 한다는 듯 미소를 건네주었고, 마트에서는 혹시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차가운 시선과 편견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고립의 벽에 균열을 내자 그 틈으로 인간적인 연대가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을 피해자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한 명의 당당한 어머니로 규정하자 세상도 우리를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믿고 살아내고 있다. 딸의 나이를 되돌려줄 수는 없지만, 딸이 이 사회에서 온전한 존재로 설 수 있도록 이해의 다리를 놓는 일. 그 다리를 놓는 용기가 나에게는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게 해 주고, 딸에게는 편견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이 될 것이다.
딸과 함께 걷는 이 길은 끝나지 않을 연대기이다. 지치고 좌절하는 날도 있지만, 딸이 가르쳐준 순수한 사랑과 내가 되찾은 단단한 자아를 붙들고, 오늘도 나는 이 사회의 경계에 딸과 함께 서 있다.
딸과 함께 걷는 이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연대기일 것입니다. 때로는 지치고 좌절하겠지만, 딸이 가르쳐준 순수한 사랑과 내가 되찾은 단단한 자아를 등불 삼아 딸과 저는 오늘도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숨이 맞닿는 이 자리에서,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더 따뜻해질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딸아이의 멈춘 시계를 바라보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멈춘 시간을 지나며 제가 놓치고 살았던 삶의 가장 귀한 조각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별 차도 없이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중증 장애를 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큰 딸을 지켜보며
그래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그 눈망울이 나를 향해 '엄마'... 하며 한번쯤은 알아봐 주겠지.. 하는 소박한 꿈을 꾸어 봅니다.
그리고 그 감내하는 삶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주시며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시는 나의 엄마
"너무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당신이 항상 제 옆을 지켜주시기에 오늘도 저는 누군가의 딸로서, 누군가의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숨 쉬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픈 기억을 가지고도 우리는 끝내 나에게로 닿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 팍팍한 토양 위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꽃을 피우겠지요.
그 꽃이 시들지 않게 지켜주는 힘은, 부모인 우리가 스스로의 숨을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의 손을 잡고 세상의 시선을 견뎌내고 있을 모든 부모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쉬는 작은 숨들이 모여, 언젠가는 편견이라는 견고한 벽을 허무는 따뜻한 바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의 시간은 멈춘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내쉬는 고요한 숨 한 번이, 아이를 지탱하는 가장 큰 우주가 됩니다.
편견의 벽은 높지만, 우리가 맞잡은 손의 온기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아이의 잠든 얼굴 위로 당신의 잃어버린 이름 석 자를 가만히 새겨 보시길요.
by 《엄마의 숨》 ⓒbiroso나.
딸과 함께 서 있는 이 경계는 아직도 늘 불안정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숨을 배운다. 멈추지 않는 숨, 나를 잃지 않는 숨, 사랑을 포기하지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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