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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이 나에게도 빛이 된다〉

8화 딸의 세상을 향한 다정한 질문

by 숨결biroso나


“엄마, 나 오늘 설문지 만들었어.
장애인 가족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말했다.
처음엔 그냥 학교 과제겠거니 했다.

“친구들은 장애가 있는 당사자 이야기만 생각하더라.
근데 나는 가족들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
치매든 발달장애든,
집에 마음이 아픈 가족이 있으면
돌보는 사람은 진짜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살 것 같아."


"엄마, 그거 알지?

가끔 보면 발달장애 아이 데리고 다니는 부모님들…
죄진 것도 아닌데 움츠려 다니시잖아.
그거 볼 때마다 마음 쓰였어.”

딸은 그 말을 툭 하고 던지더니
밤늦게까지 자료를 찾았고,
발달장애인협회에 전화를 걸어
실제 현장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했다며 웃었다.

“엄마, 아빠도 설문조사에 응해줘!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설문지 만들었는데…
도움 받으려고 구청에도 전화해 봤어!”

어쩐지 신이 나서 상기된 딸의 얼굴,
책상공부보다 원래 이런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이번 활동은 꼭 해보고 싶었다며
재잘재잘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말 대신, 마음으로.


철부지 딸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고3이라 공부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헤아리고,
움츠린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손 하나 얹어보려 애쓰는 너.

나는 그저 바라보았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물 한 잔을 꺼내 마시는 너의 등을.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큰 따뜻함을 지닌 너의 마음을.


나는 나이 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세상을 질문할 용기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도 없이.

그런데 너는,
언제 그렇게 마음이 자란 거니?






딸아,
엄마는 가끔 너를 보며 마음이 놓인다.
이제는 세상을 향해
너는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고,
작은 마음부터 움직여보려 애쓰고 있으니까.

그게 엄마에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고3이라는 무거운 자리에서조차
네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모습이,
엄마는 그저 눈부시다.



사랑하는 딸아,
부디 앞으로도 질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남들이 흘려보내는 마음들을 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파하는 사람들을 느끼며,
너 자신에게도 다정한 질문을 던지며.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다.
그리고 너의 질문이, 너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에도 작은 빛이 된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딸의 뒤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그리고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스쳐갔다.

그때, 엄마도
문 너머에서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가만히,
가장 조용한 곳에서
흘러가는 마음 하나.


사랑은,

믿어주는 마음에서

흐르고 있었단 걸

나는 이제야 배운다.





“네가 세상에 건넨 질문 하나가, 엄마에겐 오래 가슴에 남았다.”

by 《엄마의 숨》 ⓒ biroso나



(다음 이야기)

9화 엄마는 쉼이라는 이름으로 다녀가셨다


《엄마의 숨》브런치북 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기억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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