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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번역이 필요한 시간>

6화 엄마의 숨

by 숨결biroso나


말이 많아진 날이 있다.
서운해서, 답답해서,
어쩌면 그냥 너무 지쳐서.

그런 날의 대화는
대체로, 상처로 끝난다.

한동안은 우리 집이 그랬다.
대화보다 오해가 많고,
목소리보다 한숨이 크다.

딸은 고3이 되었다.
말수가 줄었고, 눈빛이 자주 매워진다.

묻지 않아도 안다.
무기력한 침묵 뒤엔 쌓이는 압박감과
벼랑 끝 같은 외로움이 있다는 걸.

나는 엄마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되고,
가끔은 감정이 앞서 목소리부터 커진다.

하지만, 남편이 딸에게 화를 낼 때면
내 마음이 더 먼저 쪼개진다.

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내 안에 오래 전의 내가 울기 시작하니까.

화를 참던 내 어릴 적 모습.
조용히 삼키던 말들.
대답 없이 기다리던 작은 나.
그 애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



남편도 요즘 흔들린다.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는 날이 많다.

"앞으로 어쩌지?"
그 말은 계획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깝다.

그도 아빠는 처음이니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여전한데
방법을 모를 때,
사람은 자꾸 말이 거칠어지기도 한다.

목소리는 커지고, 말투는 날이 서지만
나는 안다. 그건 화가 아니라 무력함이다.

그리고 나.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조용한 골목길에 들어와 있다.

사실은 요즘 자주 흔들린다.
작고 말 없는 파도처럼
느닷없이 나를 휩쓸고 간다.


예민한 딸, 불안한 아빠,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말이 엇갈리고,
표정이 오해로 번지고,
침묵이 벽처럼 쌓이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여전히 서툴게 사랑하고 있다.



“가족은, 가장 많은 말을 하면서도
가장 쉽게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젠 말 대신
‘마음을 번역’해보기로 했다.

“지쳐 있다.”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
“그래도 너를 지키고 싶다.”

그 말들을 나는 대신

속으로, 마음으로, 글로 조용히 전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서로 연결될 수 있다.
말이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부터.

그리고
그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려는
작은 용기에서부터.




딸은 또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나 보다.
익숙한 숨소리, 그리고 조심스러운 첫마디

“요즘 많이 힘들지?
아까 네 딸이 전화했더라.
엄마가 지쳐 보인다고,

자꾸 마음이 쓰인다고 하더라.”


“마음이 울적해질 땐 나한테 전화를 걸더라
할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놓인다고.”


한동안 울컥해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슴 한켠이 조용히 흔들렸다.

딸아이의 마음은
결국 나를 안아주고 싶었구나.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었고
그 마음이 나를 숨 쉬게 했다.


나에겐 엄마가,

딸에겐 할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엄마, 좋은 날이든 힘든 날이든

당신이 곁에 있어주어 오늘도 버팁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는 말보다 마음으로 안부를 전했다."
by 《엄마의 숨》 ⓒ biroso나.



(다음화 예고)


7화 <말이 없던 날의 위로>

브런치북 《엄마의 숨》에서 연재됩니다.

《엄마의 숨》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기억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감성 연재>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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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목 《엄마의 숨》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토 / 일 《말없는 안부》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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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딸 #가족 #마음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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