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 삼킨 눈물들이 내 가슴에 쏟아졌다>

소리 없이 울었다

by 숨결biroso나



비도 오지 않았는데,
괜스레 마음이 우울.
방 안엔 말이 없고,
딸아이의 눈동자엔,
울음을 삼킨 물기만 그렁거렸다.



“시험을 보는데… 글씨가 겹쳐 보이고

글씨가 하나도 안 읽혔어."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진

딸아이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장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부터
부쩍 여기저기 아프다고 말했었고,

아이의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작은 신호들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눈이 침침하다고도 했다.
어깨가 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는 말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약국에서 위장약을,
한의원에서는 기가 막혔다는 얘기를,
정형외과에선 거북목이라며 물리치료를 권했다.

내과에서는 스트레스성 위염.
신경과에서는 긴장성 두통.
진단은 다양했지만,
이유는 없었다.

“스트레스성 위염일 수 있어요.”
“한 번 더 지켜보죠.”
“약 먹어보고 다음에 다시 오세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많은 병원 중 그 어디도
“혹시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요?”
라고는 묻지 않았다.


엄마인 나도

딸아이의 짜증이 늘어날 때마다

'또 사춘기 짓 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이 시기엔 원래 다 그렇지…’
자꾸 그 말에 기대고 싶었던 듯도 하다.


하지만 그날은

그 말 한마디가 심장을 찔렀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

"팔이 떨려서 시험지 넘기기도 힘들었어."

고개를 숙인 채

작게 흘러나온 아이의 목소리.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직감할 수 있었다.
아프다면서도, 자존심을 부리며 숨겼고,

지친 표정으로도, 조용히 참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고,
입을 꾹 다물고 견디는 걸
성숙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딸아이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고
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불 꺼진 창문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 눈빛,
그 말투,
그 침묵이
자꾸 되감기듯 떠올랐다.

어쩌면 아이를 아프게 한 건
공부도, 세상도 아닌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 없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얼마나 무심한 엄마였는지....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로

내가 더 바쁘고 힘든 척만 했었던 건 아니었는지...

너도 힘든 시기이니

너의 얼굴도 살펴봤어야 했고,
나의 얘기를 하기보다 먼저
네 말투의 떨림을 들었어야 했다.


그동안 잘 해내고 있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너에게 의지도 했는데,,

그 침묵이 얼마나 오래
혼자 버틴 시간의 증거였는지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나를 다시 챙겨보기로 했다.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엄마가 아니라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는

존재만으로도 딸에게도 힘이 될테니까.


"딸아, 미안해

엄마가 방황을 많이해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건

네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빛나보자."





"네가 말없이 삼킨 눈물들이

내 가슴에 뒤늦게 쏟아졌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엄마의 숨》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히 숨을 불어넣습니다




#사춘기딸
#마음의병
#진단되지않은고통
#엄마의시선

keyword
화, 토 연재
이전 03화<엄마도 아팠겠지,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