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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ADHD 같아.”>

너무 늦게 알게 된 마음의 이름

by 숨결biroso나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는 조용히 시작된다.

그건 아이가 던진 말 한마디일 때가 많다.”



며칠 전,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ADHD 같아.”

처음엔 웃고 넘겼다.

요즘 애들은 다 그런 소리 한 번쯤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며칠 뒤, 성적표를 받아 든 딸아이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 병 맞는 것 같아. 약 먹어야 할지도 몰라.”


“누구나 힘들어.”

" 어디가 또 아픈데?"

요즘 들어 딸아이가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이 많아져서인지 왜인지

나도 모르게 짜증이 튀어나왔다.


그날 밤, 나는 몰래 휴대폰을 켰다.

검색창에 적힌 단어들.

ADHD, 청소년, 약물치료, 후회, 부모.


그러다 알았다.

그 아이는 핑계를 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으로 규정할 만큼,

이미 깊이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늦게 그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진단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딸 아이가

얼마나 망설이다 말을 한 건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나를 찾았는지,

그걸 알아차리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그랬었구나."

“늦어서 미안해.”

“이젠 같이 가보자.”

"엄마도 이젠 알 것 같아."


병원은 진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이해받기 위해 함께 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진단명보다 더 무거운 이름을 달고 살아야 하는 시기가 있다.


‘고3’이라는 이름.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고,

힘들다고 쉬어갈 수도 없는 그 시절.


내 딸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믿어준 만큼 아니 무심했던 만큼

소리 없이,

그 무게가 너무 벅차다고

혼자 말없이 버티고 있었던 거다.


문득 오래전, 나의 고3이 떠올랐다.

모든 게 벼랑 같던 그 시절,
내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를 혼자 들어야 했다.
그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이유 없이 서럽고,

이유 없이 지쳤던 하루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 역시 누군가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또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때, 나의 엄마도
이렇게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말없이 머무는 다정함이

가장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by 《엄마의 숨》 ⓒ biroso나.




(다음글 예고)


제6화 마음보다 말이 먼저 상처가 되는 날들,

〈마음의 번역이 필요한 시간들〉

《엄마의 숨》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기억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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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목 《엄마의 숨》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토 / 일 《말없는 안부》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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