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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남긴 하루의 숨결>

9화 엄마는 쉼이라는 이름으로 다녀가셨다

by 숨결biroso나


어릴 땐 몰랐다.
왜 엄마는 한참 놀다가 돌아온 나를
말없이 안아만 줬는지.
왜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씻겨주고,
밥을 말아주고,
고개를 다정히 끄덕였는지.

그땐 몰랐다.
그 조용한 순간들이
하루를 통째로 쉬게 하는 힘이었다는 걸.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내어주고,
조용히 등을 쓰다듬었다.
나를 다그치지 않았고,
“괜찮아”라는 말조차
굳이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 무심한 듯 다정한 태도에서
세상의 속도를 잠깐 멈출 수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애써 어른처럼 굴던 마음이
엄마 앞에서는
조금씩 풀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늘 ‘쉼’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에서
나를 내려놓게 해주는,
하루 중 가장 조용한 공백 같은 존재.

어릴 땐 몰랐던 그 마음을,
나는 내 자식을 키우며 알게 된다.

딸이 가끔 지쳐 돌아올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물 한 잔을 내밀고,
등을 토닥인다.
“힘들지?”라는 말도
“괜찮아”라는 말도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엄마도 그때 그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저 다정한 손길,
조용한 시선,
따뜻한 밥 한 끼로
내 마음을 다 읽어주었던 걸까?


지금 나는
그때의 엄마를 따라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서툴다.
엄마처럼 조용히,
말없이 등을 쓸어주는 일이 쉽지 않다.


괜히 조언을 하고,
괜히 걱정을 내보이고,
괜히 더 잘해보려 애쓴다.


그러다 문득 멈추며 떠올린다.
그 시절 엄마의 그 무심함은
다 말하지 못한 다정이었구나.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쉼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딸도
나를 떠올리며,
조용한 따뜻함을 기억해주기를

사람을 쉬게 하는 건
많은 말이 아니라
말 없이도 건너오는 따뜻함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는 '쉼'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하루에 다녀가셨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이던 그 손길, 돌아보면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의 숨》브런치북 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기억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 쉼이 있는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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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 목 《엄마의 숨》
2) 화/ 목 《별을 지우는 아이》
3) 화 /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4)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5)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6) 수 / 일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7) 토 / 일 《말없는 안부》
8)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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