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부서진 조각들을 껴안고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무너졌다.
일터에서 부서졌고,
사람들 틈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퇴근길 전철 안,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선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남편이 다가와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참았어?
왜 바보같이 아무 말도 안 했어?”
그건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비난이었을까
나는 그 두 가지를 가늠조차 못한 채,
조용히 웅크려 앉았다.
소파 끝에 웅크려
아무것도 아닌 듯
그러나 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병가를 냈다.
회사에는 잠깐 쉰다 했지만
실은 잠깐이 아니라
인생의 경계선이 흔들리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듯했다.
내가 무너지지 않을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서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딸은 내 옆에 있었다.
고3.
자기 미래만으로도 숨 막히는 시기에,
엄마가 무너진 집에서
그 아이는 혼자
엄마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공부 대신,
곁에 앉아
물 한 컵,
담요 한 장을 내밀며.
그 작은 손길이,
내 영혼이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미처 보지 못했다.
그 후,
성적표 앞에 무너진 딸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 아이도, 부서지고 있었구나.’
'나 때문이었을까?'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바꾸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서툴지만
이제 작은 일에도 묻는다.
“오늘은 괜찮았어?”
“힘들진 않았어?”
나는 글을 쓰며
다시 살기 위한 숨을 고른다.
엄마, 아내, 직원,
그 모든 것을 다 벗긴
나라는 사람으로
버텨낸 이야기들을,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던 눈물과 온기를
이제야 낱낱이 써 내려간다.
나는 앞으로도 쓰며
나로 살아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딸은 이제
대학 캠퍼스를 미리 다녀보며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요즘 말한다.
“엄마, 입시 끝나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다시 가족여행 가자.
우리 예전처럼
전시회도 가고, 뮤지컬도 보고,
재미났었던 것들
잊기 전에
엄마랑 다시 하고 싶어.”
그 말에
나는 오래오래 마음이 젖어들었다.
엄마가 어서 건강을 되찾아
예전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구나.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린 서로 같지 않다.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무너져본 사람끼리는
안다.
서로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는 않지만,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는 것.
그저,
곁에 있는 것.
그게 가족이었다.
딸아,
엄마가 갑작스레 무너졌던 날들동안
곁에서 온전히 지켜줘서 고마워.
네 작은 손이
내 등을 쓸어주던 그 순간에
엄마는 깨달았어.
사랑은,
버티는 게 아니라,
무너진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거구나.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엄마도,
그 시절
나를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을까?
끝내 다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자 숨을 고르고 있었을까?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조용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
엄마는 너를 보며 다짐한다.
‘우리,
부서진 조각들을 껴안고
함께 살아내자.
때로는 내가 너를 안고,
때로는 네가 나를 안고.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서툰 모습 그대로
함께 웃게 되길.
by 《엄마의 숨》 ⓒ biroso나.
《엄마의 숨》브런치북 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당신의 기억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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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목 《별을 지우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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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5)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6) 수 /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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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일 /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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