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숨 쉬듯, 나를 쓰다
에필로그
<다시 숨 쉬듯, 쓰는 마음으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어디쯤에 다다르게 될지 몰랐습니다.
끝맺음의 형태도, 완성된 글의 구조도
사실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 있다는 느낌이
글로라도 이어지기를 바랐고,
어느 하루의 마음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되기를,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문장이 생기기를.
그건 일기처럼 은밀한 것이면서도
누군가에게 말해지고 싶은,
숨겨졌지만 들키고 싶은
상처 같은 고백이었습니다.
혼잣말처럼 시작된 문장들이
어느새 나를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슬픔을 미루지 않게 해 주고,
고요를 버리지 않게 해 주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말들을
나조차 외면하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문장을 쌓듯 살아내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도
나에게 도착하는 문장을 쓰는 일이
삶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해 주었지요.
어떤 글은
읽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다시 꺼내기 위한
조용한 연습이 될 수 있다는 걸
저는 이곳의 글쓰기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조용한 자리조차 점점 줄어드는 세태 속에서
문장을 쓴다는 일이
무언가에 경쟁하듯 소비되는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깊이보다는 속도를,
공감보다는 노출을,
여운보다는 자극을
선호하게 된 이곳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는 글이
머물 자리를 잃어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
문장을 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가끔은 절박한 위로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를 붙잡아준 건 여전히 ‘한 문장’이었습니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작은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다시 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쓰는 일은 거창한 의미를 담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흘러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의 마음을 조용히 받아 적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것뿐이지만,
그 ‘그저’라는 말이 전부가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도 어쩌면,
그런 문장으로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는 사람 아닐까요?
글을 쓰지 않아도,
누구보다 깊이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숨을 고르고,
아무 말 없이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살아내는 사람.
그러니 부디,
당신의 그 마음을
너무 오래 숨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로든, 말로든,
혹은 한 사람에게 조용히 내어주는 눈빛으로든
당신의 진심이
당신에게 가장 먼저 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아도
당신의 하루를 지켜줄 수 있다고.
적어도 그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또 한 편을 시작하기로 해요.
숨결처럼, 살아 있는 문장으로.
쓰는 일은 외로운 일이지만,
그 외로움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더 선명하게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당신의 문장이,
혹은 당신의 고요한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다시 살아내게 하기를.
그렇게,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조금씩 이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당신도 나도
다시 쓰기를 바랍니다.
숨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그렇게 살아가기를.
그렇게, 또 한 편을 시작하기를.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글을 올립니다.
2025년 여름
'숨결로 쓰는 biroso나' 드림
“글이 아니라 숨이 되기를.”
by 숨결로 쓴다 ⓒ biroso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