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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pr 11. 2022

가지치기

나무들에게 맡겨놓고 기다린 지 이태 만에 매실 꽃이 만발하였다. 가지마다 빈 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흐드러졌다. 20년 전쯤 신우대처럼 가늘고 여렸던 묘목들이 어느새 몸을 불려 하얀 꽃지붕을 만들었다.     

 

2년 전 이맘때 딸은 만 3년간의 직장생활과 자취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지치고 약해져 있었다. 시퍼렇다 못해 보랏빛 멍이 선명하였다. 2년이 지나고 이 봄, 매실 꽃보다 환하게 빛나는 신부가 되었다.   

  

매실나무를 심은 지 족히 20년쯤 되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으로 한창 매실이 각광을 받던 무렵 어린 묘목 열 그루를 사다가 시골집 둘레 기슭에 돌아가며 심었다. 그 여린 것들이 한두 해 만에 뿌리를 잡더니 곧바로 쑥쑥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려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초록색 어린 열매가 맺혔다. 시름 대다가 말라버린 세 그루를 제외하고는 해마다 키를 키우고 새로운 가지를 내어 몸집을 불렸다.    

    

나무들이 제법 굵어지고 가지를 뻗으면서부터 가지치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빽빽이 자란 가지를 솎아낼 필요도 있거니와 나무 모양도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에 기초적인 방법조차 모르면서 가위질을 하고 톱을 들이댔다. 한 번도 남의 머리를 깎아본 적 없는 병사가 이발병으로 차출되어 처음 깎아놓은 머리처럼 볼품이 없긴 했지만, 녀석들은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전지를 할수록 나무들의 모양이 볼품 없어지고, 꽃과 열매도 부실해져 갔다. 어떤 나무는 누가 보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수형이 형편없어졌다. 꼭 인정사정없이 가지가 잘려나간 가로수들을 보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자른 가지를 도로 붙여놓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밑동째 베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참 한심한 가지치기였다.      


그러다가 3년 전쯤 교보문고서 가지치기 방법을 설명한 책을 만났다.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정원수 가지치기》라는 책으로, 엇비슷한 책들에 비해 설명도 쉽고 사진도 선명한 것이 한 번 쓱 보기만 해도 이내 따라 할 수 있을 성싶어 주저 없이 사 들고 와 읽기 시작했다.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춘 만큼 수월하게 읽혔다. 그런데, 가지치기의 원칙과 기초 부분을 읽다가 그동안 내게 ‘가지치기를 당한’ 나무들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47페이지까지 읽고는 그동안 나무들에게 참 못 할 짓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못 하는 나무라고 너무 쉽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그동안 나무들에게 한 짓은 선무당의 굿만도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지치기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무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심어만 놓고 방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방법도 모르면서 칼춤을 추듯 가지를 쳐내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수종별로 적당한 시기에, 올바른 방법으로 자르고 자른 자리에는 반드시 상처보호를 위해 도포제를 발라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동안의 나의 무지와 몰인정을 무슨 말로 변명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서 2년간 가지치기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누가 봐도 잘라줘야 할 것 같은 가지들만 심사숙고해서 잘랐다. 그새 나무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가지들을 밀어 올려 모양을 만들고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올봄, 그 가지들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 흐드러졌다.  


딸은 집으로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생기를 되찾았다. 멍은 옅어지고 저 스스로 곁눈의 싹을 밀어 올려 튼튼한 가지로 키워냈다. 그 몇 달 동안 간섭도 하고 밀어붙인 적도 더러 있었다. ‘나는 30년을 견뎠는데, 겨우 3년 견디고 저렇게 힘들어할까’하는 생각과 말이 불쑥불쑥 목젖까지 튀어 올랐다. 그럴 때마다 가지치기를 생각했다.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섣부른 가지치기보다 나을 수 있음을, 잘못된 가지치기가 자칫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기에 지켜보는 쪽을 택하였다. 그리고 올봄, 딸은 수백만 송이 매실 꽃보다 환하게 빛나는 신부가 되었다.      


가꾸지 않아도 필요할 때면 스스로 제 삭정이를 잘라내는 것이 나무들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그네들에게 맡겨놓고 꽃이 피면 꽃구경이나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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