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 후의 조바심에 대하여 -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에 걸렸다. 7일 동안을 꼼짝없이 방 안에서만 지냈다. 그렇게 갇혀있다가 나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다. 벚꽃은 흔적 없이 져버리고 영산홍 무리가 사방에서 추파를 던진다. 봄 햇살 가득 담은 그 눈길들이 뜨겁지만 져버린 벚꽃만 아른거린다.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가다니, 아쉽다.
퇴직한 지 어느새 4주가 다 돼간다. 간간이 동기들이며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인사에는 예외 없이 ‘앞으로 무얼 할 거냐?’는 걱정이 딸려온다. 잘 지내고 있고,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심 아직은 나를 퇴직자, 은퇴자 내지는 실직자, 좋게 말해서 자유인 따위로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아직도 내 이름만으로 불리기보다는 무언가 그럴듯한 직책과 함께 불리고 포장되기를 바라는 미련이 남아있나 보다. 벚꽃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는데 아직도 벚꽃에 연연하고 있다고나 할까?
지난 30여 년간을 굳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이 살아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명함이 없이 살았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저희는 명함을 쓸 수가 없어서.......” 그렇게 설명하고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명함을 대신하곤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왜 명함이 없는지를 설명하고 물색 안 나는 종이쪽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면서도 계면쩍지도, 주눅이 들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해도 이미 상대는 나를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고 받아들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저희’라는 울타리가 남들에게 명함보다 더 나를 더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면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준다. 지난 토요일, 몇 분을 만났다. 대부분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인사를 하면서 예의 “제가 명함이 없어서.......”를 반복했다. 왜 명함이 없는지 간단하게 덧붙인 설명이 그분들에게 닿았다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일순간 나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이제는 ‘저희’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걷히면서 오롯이 민얼굴로 나를 설명해야 하는 데 내세울 것이 변변치 않으니 자격지심에 지레 계면쩍은 웃음으로 민얼굴을 가려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됐든 나를 새롭게 정의해줄 명함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급함이 봄풀처럼 쑥 자랐다. “기대고 비빌 언덕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맡겨놓은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은 질색 팔색을 하면서 무슨 수로......?”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무서리 맞은 가을 풀처럼 시들어 버린다.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워보자던 마음이 웃자란 봄풀에 쉬이 덮여 버린다.
하지만, 아직은 게으른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올레길 걷듯 ‘놀멍 쉬멍’ 살아보고 싶다. 아니, 나만을 위한 삶에 치열하여 ‘실직자였을 때만큼 활발히 일했던 적이 없으며, 홀로 있을 때만큼 외롭지 않았던 적이 없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래서 자문하고 자답한다.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묻고, “아직은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답을 한다. 봄이 깊다. 더는 저버린 벚꽃에 연연하지 않고 영산홍 그 환한 추파에 마음을 주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