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기르기

- 명상 혹은 호흡 수련에 대하여 -

by 이윤구

외가 안방 윗목에는 언제나 콩나물시루가 삼베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어엿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두어 시간마다 삼베 보자기를 들추고 조롱박 바가지로 흠씬 물을 부어주곤 하셨지요. 물은 콩을 적시고 순식간에 물동이로 흘러내리고, 콩들은 다시 베보자기에 덮인 채 다음 물 때까지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냈지요.


신기한 것은 따로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닌데 콩들은 그 알량한 물기만으로도 잘도 키를 키우고, 몸을 불리는 것이었어요. 콩을 안친 지 대엿새가 지나면 시루에는 어느새 아기 뼘만큼 자란 노란 콩나물들이 베보자기 밖이 궁금한 듯 까치발을 세웠고요.

2, 3년 전부터 뱃속에 콩나물시루를 앉혔습니다. 배꼽 밑 단전에 시루 하나를 들이고 물에 불린 콩들을 한 됫박 앉혀두었습니다. 그리고 ‘숨’이라는 물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5분일 때도 있고, 길게는 1시간일 때도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매일 주려고 하지만 어떤 날은 온갖 핑계로 건너뛸 때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콩이 마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참선이라고도 하고, 명상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단전호흡이나 그냥 호흡 수련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참선’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냥 ‘호흡 수련’을 하고 있지요.

지난 3, 4년, 제게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에 부친 시간이었습니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짊어져야 할 짐도 점점 무거워졌지요. 승진은 기쁨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고,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행복하다는 느낌은 요즘 말로 ‘1도’ 없었지요.

그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우연히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 뉴욕대 등 명문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깨달음의 스승을 찾아 입국하였고, 인천 용화사에서 출가 후 30년간 참선수행을 하다가 환속하여 도시 수행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라는 부제가 붙은 1권과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이라는 부제의 2권까지 두 권을 내쳐 읽었습니다. 30년 수행으로 ‘한 경지’를 터득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참선의 필요성과 이점과 함께 ‘누구나 지금 즉시 아무런 준비 없이’ 할 수 있다는 말에 호감이 갔습니다.


책을 다 읽은 그날 저녁부터 바로 뱃속에 콩나물시루를 앉혔습니다. 결가부좌로 시작하였다가 다리가 아프면 반가부좌로 고쳐 앉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였습니다. 제대로 숨을 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숨길에도 동맥경화가 있는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숨길에 질척한 토사나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날마다 숨을 생각하고, 숨길을 생각하고, 들숨과 날숨을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2020년 말에 1급으로 승진을 하였습니다. 공직의 정점에 올라섰는데 기쁨은 순간이었고, 하루하루가 마치 거꾸로 선 피라미드를 홀로 받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거꾸로 선 피라미드를 받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중심을 잡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무게는 또 어떻겠어요? 까딱 중심을 잃어도, 한순간 무게를 견디지 못해도 피라미드는 쓰러지고 무릎은 꺾일 수밖에요. 그걸 혼자 받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부담감과 힘겨움 가운데서도 평정심이 쉬 무너지지 않고, 수용하는 그릇의 크기 역시 커진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일이 닥쳐도, 미운 짓을 하는 친구가 생겨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내 운명이 바뀌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이 유지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내 그릇이 그렇게 넓지는 않은데, 내 아량이 그 정도로 크지는 않은데......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한 것일까? 무엇이 거꾸로 선 피라미드를 지탱하게 한 것일까? 운명의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다른 게 없었습니다. ‘콩나물 기르기’ 밖에는 달리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외할머니댁 윗목의 시루 속 콩들처럼 내 안에 안쳐놓은 콩들도 ‘숨'을 마시며 어느새 한 뼘씩 키를 키우고 몸을 불린 것입니다. 테오도르 준 박이 30년 넘게 참선을 붙들고 있는 이유가 이런 것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안의 콩들이 콩나물로 끝이 날지 콩나무로 자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날마다 물을 주다 보면 시루 속 콩들처럼, 거름이 없어도 쑥쑥 자라 있을 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잠깐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작년부터는 유튜브를 켜놓고 호흡 수련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학당의 ‘○○명상’ 동영상을 보면서 숨을 가다듬었지요.


최근에는 같은 학당 게시물 중 ‘호흡수련 가이드 1시간'을 따라 합니다. 따라 하기 쉽고, 젊은 수행자의 목소리가 차분하여 내 마음도 절로 차분해집니다.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면서 어깨와 허리의 힘은 빼고, 들숨과 날숨의 길이는 같게 하되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숨을 쉬는 것이 전부입니다. 기교와 비법이 따로 없는 것이 2시간마다 물만 주면 자라는 콩나물 기르기와 꼭 닮았습니다.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숨을 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숨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고, 막힌 숨길도 뚫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거름 한 줌 없고 햇볕 한 조각 없는 시루 안에서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리는 콩나물들을 생각합니다. 내 안의 콩들도 내 어두운 심연에서 오직 ‘숨’만으로 넉넉히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릴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콩이 콩나물이 될지, 콩나무로 자랄지 혹은 다른 무엇이 될지 나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숨을 쉬다 보면 한 뼘쯤 자라 있을 거라 믿기에 오늘도 가지런히 앉아 숨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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