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점괘

- 덕분에 오늘도 재미있게 잘 살았습니다 -

by 이윤구

살면서 점을 봐본 적이 없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막막한 날들의 끝이 어디쯤 일지 묻고 싶은 적도 적지 않았고,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점을 본 적은 없다.

부침 없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도 아니고, 답답하고 괴로운 일들도 남들 못지않았고, 그래서 무언가에 기대고 싶고, 어떤 것이든 붙잡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한 번도 점을 본 적은 없었다.

성격이 낙천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온전히 신뢰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혹여 희망이 엷어지는 말이나 가슴에 맺히는 말을 들으면 그 말에 매여 전전긍긍할 것 같고, 그 말이 지워지거나 또 다른 말들로 덮여 버릴 때까지 좌불안석일 것 같아서 재미 삼아 보는 것조차 애써 피하고 산 것 같다.

그런데도 내게는 인생의 길잡이별 같은 최고의 점괘가 두 개나 있다.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었고, 비바람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불씨를 지켜준 고마운 점괘들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최고의 점괘냐고 물으면 빼닮은 쌍둥이처럼 닮아 우열을 정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점괘들이다.

큰애는 주변 사람들 덕에 잘 살겠네요” 첫 번째 최고의 점괘다. 철이 들 무렵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 평범한 한마디가 심중에 자리 잡고서 수십 년간 든든한 버팀목이자 늘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경책이 돼주었다.

내가 열 살도 되기 전, 그때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탁발승이 집에 왔었단다. 탁발승보다 더 가진 것이라고는 긴 머리카락과 자식 넷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보리쌀 한 사발을 덜어 바랑에 부어 드렸단다. 그때 탁발승이 답례쯤으로 내 사주를 짚어보고 한 말이 바로 ‘주변 사람들 덕에 잘 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단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온전히 부모님 덕을 입고 살아왔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부모님 덕에 더해 주변 사람들 덕분에 잘 살아왔다. 대학에 합격은 하였으나 당장 먹고 잘 곳을 못 구해 걱정하고 있을 때 나를 품어준 사촌 형과 이모님, 분에 넘치는 위치까지 나를 끌어올려 주고 밀어준 직장의 수많은 인연들, 퇴직과 함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에 연착륙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 그렇게 줄곧 누군가의 덕분에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


그때 그 탁발 스님이 정말로 그런 점괘를 말했는지 어머님께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어쩌면 어머니가 그 스님을 빌어 그런 말을 지어서 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그 한마디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든든한 뒷배였고, 내 인생의 큰 버팀목이 되었다.

‘사주팔자를 잘 타고나서’, '조상의 음덕으로' 혹은 ‘잘나서’ 잘 살겠다고 했으면 아마 다른 삶을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든 이의 덕분’ 임을 생각하며 원망보다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한마디의 마법이었다.


재미있게 잘 살겠네.”두 번째 최고의 점괘다. 신이 내렸다는 식당 여주인한테서 들은 별것 아닌 한마디가 내게는 ‘별것’이 되었다.


광주에서 근무하던 5년 전 이 무렵, 광주와 전남 지역에 터를 잡은 대학 동기들과 후배들 몇을 모아 함평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신들린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식당 여주인이 내게 툭 던져준 점괘 두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재미있게 잘 살겠네’였다.


십여 명 일행들을 쓱 쳐다보고는 돌아가며 툭툭 한두 마디씩 해주었는데, 지나고 나서 확인해보니 말한 것들 대부분이 용케도 들어맞았다. 나 역시 짚어주었던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거짓말처럼 딱 들어맞아 ‘재미있게 잘 살겠다’는 점괘도 헛말이 아닐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재미있게 잘 살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어떤 말보다도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게 살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데 ‘잘 살겠다’는 말까지 덧붙었으니, 두툼한 연봉에 그보다 훨씬 많은 보너스를 한꺼번에 받은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재미있게 잘 살겠다’는 그 한마디가 직장생활 중 가장 힘에 부쳤던 마지막 5년을 꾸역꾸역 견뎌낼 수 있게 해 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오늘은 힘이 들어도 내일은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기꺼이 견딜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 이른 퇴직을 해야만 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할 수 있었다.

가끔 '점을 봐볼까' 할 때가 있다. 함평의 그 식당이라도 찾아가 볼까 할 때도 있다. 퇴직을 한 후 딱히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궁금할 때가 많다. 아직 진로를 결정 못 한 장성한 아들의 미래가 어떨지도 걱정이다.

그러나 또 주저하고 미룬다. 어쩌면 평생 점을 보러 가는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함평의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앞날이 궁금하고 걱정스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껏 힘이 되어준 최고의 점괘들을 믿고 살아 볼 생각이다. 언제라도 "덕분에 재미있게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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