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 긴 여운

- 부모님과 세 시간 동안의 나들이 -

by 이윤구

카카오톡 가족방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부석사와 도비산 일대를 돌아보며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셋째 여동생) “시원하게 바람 잘 쐬셨네~”

(둘째 여동생) “아들들하고 찍은 게 처음 같은 데? 기분 좋으셨겠구만”


서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 어머니, 막냇동생과 함께 면 소재지에 있는 콩국수 집을 가기로 했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다. 멀리 가든 가까운 곳을 가든 언제나 한결같으시다. 편하게 입으셔도 흉 잡힐 일이 없는데, 매번 차려입는 것을 보면서 과하게 체면을 차리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세월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당신의 체면 때문이 아니라 자식들을 생각한 깊은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여라도 추레한 차림새가 자식들에게 누가 될세라 옷을 갈아입고 빗질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그 마음의 끝단이나마 읽을 수 있을 만큼 나이 든 아들이 되어버렸다.

면 소재지 식당치고는 맛도 위생도 나무랄 데가 없어 제법 유명한 집에서 콩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도비산 7부쯤에 자리 잡은 부석사로 향하였다. 비록 규모에서는 비교할 바 아니지만, 영주 부석사와 함께 선묘 낭자와 의상대사의 전설을 공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어쩌면 대사와 낭자의 전설이 영주의 부석사에 이르기 전 그들이 서해를 건너 첫발을 디뎠을 이곳에서 숙성의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설과 풍광이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어릴 적 소풍을 다니며 느꼈던 호젓함과 고졸함이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전설 또한 윤색되거나 채색되지 않고 옛이야기 그대로일 것 같아 안도가 되었다.


어머니와는 오래전 함께 와 본 적이 있지만, 두 분을 함께 모시고 온 것은 처음이다. 태안 시내와 서산 간척지, 그리고 그 너머 멀리 서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내 찻집에 들러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한가로이 차담을 나누었다.


육십몇 년 전 땔감을 구하기 위해 이곳 도비산까지 왕복 육십 리 길을 지게를 짊어지고 오가셨던 얘기며, 절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간 동네 처녀를 찾기 위해 이곳 부석사까지 온 적이 있다는 얘기 등등 지금껏 몰랐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소환되면서 잠시나마 이야기 속 젊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주름 마다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 추억들,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게 할 기회가 얼마나 있으려나......


찻집을 나와 도비산을 감아 도는 임도로 접어들었다. 7부 능선을 따라 잘 다듬어진 길을 가다 보니 찻집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조망터가 나타났다. 해넘이 전망대로 닦아 놓은 자리인데, 태안과 그 너머 서해 일원은 물론이고 맑은 날이면 중국까지 보인다고 해도 믿을 만큼 조망이 훌륭하였다. 집 근처에 놓고도 처음 와본다며 연신 탄성을 자아내는 막내의 들뜬 성화에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스라이 펼쳐진 서쪽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 칠순에 가족사진 찍은 것과 어머니 칠순 기념으로 거제와 통영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리고 지난 2월 딸 혼례를 치르면서 결혼식장에서 찍은 것 정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함께 찍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살갑지 못한 내 성격 때문이다.


가끔 두 분을 모시고 만리포로 파도리로, 또는 안면도나 집에서 가까운 간월도 등지를 한 바퀴 돌곤 했는데, 가는 곳마다 두 분이나 찍어드렸지 내가 함께 찍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짧은 여행에 성격 좋은 막냇동생이 합류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다.


2남 2녀의 장남으로서 스스로 늘 듬직한 아들이어야 했고, 듬직한 아들이기 위해서 다른 감정들은 덮어두거나 깊이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정은 긴 가뭄에 말라버린 새싹들처럼 아예 말라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색깔도 막내의 공작처럼 화려하고 때로는 뻔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것들에 비하면 흑백사진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도 한 번 못 해 봤고, 부모님 역시 그런 아들에게 선뜻 생각이나 바람을 말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도 틀에 박힌 인사와 문답이 대부분이고, 오랜만에 찾아뵐 때도 지난번 뵐 때 나누었던 대화의 범위를 벗어나기 힘든다. 어쩌면 장남이라는 굴레 아닌 굴레에 30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배인 딱딱한 습성이 더하여져 그런 성격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모퉁이를 돌아 한참을 가니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한 달 동안 학력고사 공부를 핑계로 친구 두 명과 함께 기거하였던 석천암이 나타났다. 법당 뒤편에 장엄하게 서 있던 큰 바위에는 약사여래불 등 부처님 세 분이 날아갈 듯 매끄럽게 조각되어 있고, 그때 기거하였던 흙집 대신 커다란 요사채 건물이 들어서 있는 등 속세만큼이나 많이 변해있었다. 번창한 절 살림에 내 추억의 장소들은 지워지고 허물어졌지만 멀리 동쪽으로 보이는 가야산과 그 연봉들의 변함없는 모습이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석천암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발자취가 서린 곳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무시로 이곳을 찾으셨단다. 평생 가난과 근심 속에서 살다가 가신 할아버지의 인생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는 나로서는 당신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의심스럽다. 다만 나 또한 할아버지처럼 한때 이곳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린 적이 있음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거쳐 내게 이어진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세 시간 남짓, 어머니 아버지의 행복한 표정을 보았다. 이루어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바람들처럼 어쩌면 나 또한 이룰 수 없는 목표인 대단한 아들, 잘난 아들이 되려고만 애써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아들로도 만족하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들하고 찍은 게 처음 같은 데? 기분 좋으셨겠구만”둘째 동생의 짧은 메시지가 죽비처럼 와닿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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