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포항에 다녀왔다. 계획한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퇴직 100일 기념 여행이 되었다. 30년이 훌쩍 넘는 옛 인연들과 오랜만의 만남도 좋았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른하게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책을 읽는 것도 좋았고, 번잡한 고속버스 터미널과 휴게소의 들뜨고 달큼한 공기도 반가웠다.
포항제철이 지척인 송도 해변에서 늦도록 오랫동안 쌓아놓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제각기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숨은바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물살에 깎이고 파도에 부딪히면서도 단단하고 장엄한 바위 같았다.
송도 해변광장에서 밤늦도록 이어지는 이름 모를 노래패의 노래를 듣고 있다가 자진해서 무대로 나가 노래 두 곡을 불렀다. 퇴직 100일의 자축이자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노래를 불렀다. 마이크를 들고 반주에 내 목소리를 싣는 순간 뜻밖의 해방감이 밀려왔다. 오래전부터 나를 얽매고 있던 단단한 사슬이 끊어지고 비로소 자유롭게 풀려난 기분이 들었다.
별로 나서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걸어 나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내 인생 일대 사건이다. 밤바다의 분위기에 취해서도, 노래패의 추임새에 취해서도 아니었다. 여행이라면 이렇게 하는 거란 걸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고, 경험해주고 싶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또 다른 나를 깨우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나, 누구나 알고 있는 나를 뒤집어 보고 백척간두에서 허공으로 한 발을 망설임 없이 내딛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광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평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가 바다로 보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바람은 바람으로 느껴지는 가운데 나는 이제 막 굵고 단단한 사슬에서 풀려나 해방된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퇴직한 지 석 달 넘게 지나면서 모든 것들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퇴직을 목전에 두고 생각하고 그려보았던 막연한 계획과 의욕들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리저리 얽혔던 인연들은 시간과 함께 짙어지거나 옅어지고 있지만, 어느 쪽에도 집착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아직 보람이나 삶의 의미를 느낄만한 일거리도 놀 거리도 찾지 못하였지만, 하루하루의 모색은 분주하다. 분주하기는 하지만 화급을 다툴 것은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암중모색(暗中摸索)이라고나 할까. 방향도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이것저것 더듬고 있으니 암중모색이요, 화급한 것이 없으니 유유자적이다.
석 달 남짓한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여러 가지 경험과 모색도 하였다.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하였고, 그 직후부터 일상의 풍경과 감상들을 버무려 30편 가까운 글을 썼다. 수십 년 동안 두서없이 쌓인 감정과 생각들을 체질하듯 걸러내고 갈무리하면서 훨씬 가벼워지고 훨씬 넓어졌다. 물론 아직도 간간이 연락을 해오는 동료들과 후배들이 있어서 내가 누구였는지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꼬박 두 달간 주말을 온전히 바쳐서 숲길 등산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도 자격증이지만, 세상에는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 많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맨발 걷기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맨발 걷기 시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생명 살리기 맨발 걷기 축제에도 참가했다. 한 사람의 맨발 걷기에 대한 신념과 헌신이 대모산의 나무만큼이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목도했다.
장애인 활동 지원사 양성 교육도 수강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장애인과 장애에 대해 배우면서 여태껏 감겨있던 한쪽 눈이 떠지고 비로소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느낌이다. 진짜 장애는 몸이 뒤틀리고 손발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잡아주고 일으켜 줄 수 있는 손이 있음에도 뒷짐을 지거나 눈길을 돌려버리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고작 그런 것들로 허송세월하고 있냐고 흉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하늘을 나는 것보다는 낮은 땅바닥을 뒹굴 때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니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다. 30년 직장생활을 바닥부터 시작하였듯,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도 바닥부터 천천히, 단단히 다지면서 시작할 것이다.
6월 말에는 처음으로 퇴직자 모임에 참석하였다. 40여 명 참석자 중 57살의 내가 가장 어린(?) 신참이었다. 재직 시 한 부서에서 근무한 분들이라 대부분 낯이 익은 것은 물론이고, 직속 상사로 모신 분들도 적지 않아 과거의 어느 한때로 돌아가 사무실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80이 훌쩍 넘은 고령의 대선배를 비롯해 대부분 십몇 년씩은 연배인 선배들과 한자리에 앉아있자니 그분들의 시간 속에 함께 갇혀 버린 느낌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퇴직을 했다는 실감이 와닿았다. “벌써 내가 이렇게 연로하신 분들과 함께 하는 처지가 되었구나”하는 현실 인식과 함께 씁쓸한 자조가 밀려왔다.
고령인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취미활동이나 운동 등으로 소일하고 있을 뿐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분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한 분이 ‘태극기 부대’ 일원으로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투사’가 되어 있었는데, 그 주장의 극단적 치우침은 차치하고 뜨거운 열정만큼은 무척 존경스러웠다. 온기 없이 미적지근하게 앉아있는 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면서 내가 품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2시간 가까이 앉아있다가 기념 수건 한 장을 받아 들고 집으로 오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이 나이에 저분들처럼 저렇게 세월을 보낼 것인가. 그게 싫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할 것인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만한 일을 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아직은 박제된 추억담이나 풀고 싶지는 않은데, 펄떡펄떡 생명이 생동하는 대지 위에서 파도 철썩이는 바닷가에서 하늘이 가까운 산꼭대기에서 조르바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싶은데.......
뭐라도 돈벌이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대접을 받고 싶으면 밥값 잘 내고 술값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밥값과 술값을 위하여 돈을 구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차가운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성정에 맞는 것 같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자의 몽상처럼 들리겠지만, 그게 나이고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어쩌랴.
100세 철학자 김형석의 『백 년을 살아보니』란 책을 다시 읽다가 눈에 들어온 구절이 있다. “불행한 사람이란 아무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낸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란 공부와 취미활동을 시작한 사람과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이란 구절이었다.
지금까지의 나,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불행한 사람은 지나친 자조이고, 행복한 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00여 일,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불행한 사람으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 사람으로도 남고 싶지 않다. 배우고 즐기고 또한 얼마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 꼭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암중모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