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농막에 가서 텃밭과 잔디밭, 진입로까지 풀을 뽑았습니다. 혼자서 하려니 진척은 더딘 데다 저녁 무렵이 되니 고된 손은 볼이 메었는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풀을 뽑고 나서 농막 풍경이며 주변 풍광 사진을 찍어 몇몇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이구동성 신선놀음이라고 합니다.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팔자 좋은 신선이 아니라 고되게 일하는 일꾼인 줄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온전히 몸을 쓰는 일이라서 안 해본 사람은 반나절도 견디지 못하고 줄행랑을 칠 게 뻔합니다.
텃밭의 푸성귀와 밭둑에 저절로 자란 왕고들빼기 잎 몇 장, 풋고추 서너 개로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조촐하지만 남 부러울 것 없는 성찬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라디오를 켭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해 지면 별달리 할 것도 없는 산골에서 라디오는 좋은 친구입니다. 골이 깊어서인지 지직대는 잡음이 많이 섞입니다. 라디오를 들고 이곳저곳 옮겨 전파를 잡았습니다. 딱 그 자리에 라디오를 놓아 전파를 붙들어 맸습니다.
핸드폰만 켜도 선명한 음질의 방송을 들을 수 있는데 굳이 다이얼을 돌리고 자리를 옮겨 다녀야 겨우 잡음 섞인 소리를 들을 수있는 구닥다리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모든 게 느린 이곳 분위기와는 그게 썩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너무 매끈한 소리는 마치 세련되게 차려입은 도회 사람 같아서 풀 냄새 풀풀한 이곳의 풍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해 떨어지면 읽을 요량으로 책 두어 권을 챙겨 오긴 했지만, 몸이 지치니까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지친 몸에 필요한 것은 몇 줄 지식이 아니라 휴식이라는 것을 마음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펼쳐 들었던 책을 덮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입니다. 금세 편안해집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자니 라디오를 켰는지 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멍’도 아니고 ‘물 멍’도 아닌 ‘라디오 멍’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라디오 소리를 뚫고 길 건너편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장맛비에 물이 불어 소리가 장쾌합니다. 장쾌하지만 요란하지는 않습니다. 여치며 귀뚜라미 소리도 들립니다. 산골의 여름밤은 눈 대신 귀가 열리는 시간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셀카 한 컷을 찍어봅니다. 제법 그럴듯하게 사진이 찍혔습니다. 종일 고된 노동에 얼굴 가득 덕지덕지 붙어있던 찌든 때가 땀과 함께 씻겼는가 봅니다. 맑은 얼굴입니다. 다시 한 컷을 찍어봅니다. 이번에도 말간 얼굴의 남자가 있습니다. 또 한 컷을 찍습니다. 자꾸만 찍어보고 싶습니다. 처음 해보는 셀카 놀이입니다.
책을 들고 독서하는 모습도 찍어봅니다. 안경을 쓰고도 찍고, 벗고도 찍어봅니다. 커피잔을 들고도 찍어봅니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는 다른 모습의 나는 참 낯섭니다. 가족 카톡방에 올려봅니다. 어떻게 찍은 것이냐며, 사진이 잘 나왔다고 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놀았습니다. 맑은 얼굴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겁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 내 모습이 나 같지 않고 낯설게 느껴지곤 합니다. 아니, 낯설다기보다는 실망스럽습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들 하지만 씁쓸하고 받아들이기 싫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평생토록 만든 인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기 때문입니다. 해온 것 생각은 안 하고 결과만 탓하는 것은 나이 먹어서도 버리지 못한 못된 습성입니다.
머리카락이 세고 이마에 주름이 잡혀있는 것이야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내가 봐도 싫습니다. 입을 일자(一字)로 다물고 있으면 영락없이 화가 난 표정입니다. 그런 딱딱한 얼굴이 내 얼굴이라는 게 실망스럽습니다. 참 못나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면 내 못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남자 나이 40이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나는 내 얼굴에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내 얼굴에 책임을 지지 않고 산 것 같습니다. 그 작은 얼굴도 제대로 못 가꾸면서 수백 평 잔디밭과 텃밭을 가꾼다고 먼 길 왔다 갔다 하는 게 우습기도 합니다. 두 손바닥으로 덮을 수 있는 넓이의 얼굴도 제대로 갈무리 못 하면서 이 먼 곳의 좁지 않은 땅을 꾸미려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50살을 넘으면 타고난 생김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빠르고 늦거나,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주름이 지고 늙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고, 수술을 해도 언젠가는 그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얼굴은 삶과 대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빛깔도 형태도 온도도 변합니다. 그래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말이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 멍을 하고 셀카를 찍다가 문득 오늘 흘린 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편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진실된 땀이야 말로 가장 향기로운 남자의 화장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스킨보다 향기롭고, 어떤 로션보다 더 매력적입니다. 켜켜이 쌓인 묵은 때까지 제대로 빼주는 걸 보면 품질 좋은 클렌징크림 같기도 합니다.
거울을 보고 사진 속 내 모습을 봅니다. 여전히 맑은 얼굴의 내가 있습니다. 주름이 지고 검게 그을렸지만 많이 비워지고 씻겨 말갛고 환해진 얼굴입니다. 하루 흘린 땀의 보람이 이 정도라면 매일같이 땀을 흘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얼굴에 맞는 화장품을 알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한 컷 건져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런 얼굴’을 만나서 기쁜 날이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셀카놀이를 하면서 영월까지 힘들여 먼 길 오가야 할 이유를, 애써 땀 흘리는 의미를 비로소 찾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