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
-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 아버지께 드립니다 -
한 달 동안 세 번 고향 집을 다녀왔다. 직장에 매여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았거니와, 간다 하더라도 갈 길 바쁜 손님처럼 당일치기를 하거나 길어야 하룻밤 자고 올라오는 게 고작이었다. 특히 제사를 내가 모시면서부터는 명절에마저 부모님이 역귀성을 하시면서 더더욱 고향 집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30여 년 만에 손님이 아닌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사흘 밤도 자고, 이틀 밤도 잤다.
4월 초, 부모님께 퇴직 사실을 말씀드렸다. 진작 운은 띄어놓은 터라 대략 알고는 계셨겠지만, 두 분 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한마디로 번잡한 심사를 덮어 버리신다. 분명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궁금도 하시고 걱정도 되시련만, 그냥 그 한마디 말씀으로 그런 마음들을 덮어 버리신다.
아들은 육십도 못 된 나이에 일을 놓았는데, 팔십 다섯의 아버지는 여전히 평생의 업(業)을 붙잡고 계신다. 평생을 그랬듯이 밭일을 하고 논일을 하신다. 그렇게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증명하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점점 말라 가는 가슴을 내어 뻐꾸기 새끼처럼 커버린 아들과 딸들을 품으신다. 나는 때때로 그 편안한 둥지에서 덩치 큰 새끼 뻐꾸기와 그 새끼 뻐꾸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어미 붉은 머리 오목눈이를 생각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군말이 없으시다. 말이 필요할 때조차도 아버지는 그저 당신의 등을 보여주실 뿐이다. 아들은 그 등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고, 뜻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서 사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아버지의 인생이 내게 유전되고, 어느 결에 나는 아버지를 닮아있다. 때때로 반면교사(反面敎師) 일뿐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걸음걸이를 닮고, 말 없음을 닮고, 얼굴을 닮아있다. 긴 세월을 아버지와 다른 길을 돌고 돌아서 왔는데, 결국 나는 아버지를 닮아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여윈 뒷모습을 보았다. 어떤 무게라도 견딜 것 같던 어깨와 등이 사뭇 여위었다. 4월 중순, 한참 전부터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는 말씀에 병원 예약을 해 놓고 모시러 내려갔다. 그동안 생으로 참고 지내셨단다. 모시고 올라오던 날, 아버지는 새벽같이 면 소재지에 있는 이발관을 다녀오셨다.
이발을 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감자밭과 마늘밭에 농약을 쳐야 한다며 서두르셨다. 병원에 다녀와서 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서두냐는 어머니 말씀에 “이번에 올라가면 살아올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는데 말끔하게 해 놓고 다녀와야지......” 그예 농약을 치고 나서야 출발을 했다.
의식을 준비하듯 머리를 다듬고, 숙제를 하듯 농약을 치고서야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다행히 단순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제 단순 식도염에도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시고, 매일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삶의 의식을 치르고, 그날의 숙제는 그날 끝마쳐야 할 것처럼 살고 계신 것이다.
나는 이제 아버지보다 몇 발짝쯤은 앞서 걸을 수 있다. 내 걸음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걸음이 느려진 까닭임을 매 순간 느낀다. 앞서 걷다 멈춰서 느린 걸음의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여위고 굽은 모습을 가슴에 담는다. 나란히 걸으며 공중에 흩어지는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들을 붙들어 가슴에 담는다. 아직 지워지지 않고 선명한 어릴 적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처럼, 나는 언젠가는 그 숨소리를 추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매 순간 의식을 치르고, 숙제를 하는 아버지의 삶을 보고 싶다. 더 오랫동안 함께 걸으면서 아버지의 느린 걸음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