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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Jul 09. 2022

브런치와 함께한 100일

- 글쓰기, 일상이 된 즐거운 고행  -

브런치 작가 심사에 통과하였다는 메일을 받은 지 어느새 100일이 되었다. 퇴직 즈음의 소감을 정리해 올린 첫 번째 글을 시작으로 어느새 28편의 글을 썼다. 수백 편, 혹은 그 이상을 쓴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정도이지만, 어림잡아 사나흘에 한 편씩을 쓴 것이니 글의 수준을 떠나 그 열심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타고난 문재(文才)도 없는 데다 일기조차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터라 용을 써봐도 오십보백보에 불과하지만, 기왕 시작한 것 성심껏 해보자는 각오만은 단단하다. 한 편 예외 없이 글의 흐름과 문단의 배열은 물론이고 단어 하나 쉼표 하나까지도 수십 번씩 다시 보고, 바꿔보고, 읽어 본 후에야 비로소 올리고는 했다. 정확한 뜻과 뉘앙스를 찾기 위해 낱말을 검색하는 습관도 생겼다. 비록 신변잡기와 마른 시냇물처럼 얕은 생각들에 불과하지만, 오매불망 짝사랑에게 첫 편지를 쓰는 소년의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온 마음을 다하곤 하였다.   

  

어느새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첫 문장을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고, 다음 단어와 문장을 무엇으로 이을지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면서도 즐거이 책상 앞에 앉는다.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수시로 내면 깊숙한 곳까지 뒤집어 본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던 희망처럼, 마음 저 밑바닥에 아직 쓰지 않은 뭐라도 하나쯤 남아있기를 바라며 등불을 비춰보곤 한다.      


쓸 때마다 기억에 남을만한 멋진 문장이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쯤 버무려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억지로 그런 것을 찾거나 쥐어 짜내려 애쓰지는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내 마음과 생각들을 제대로 표현할지, 과하게 덧붙이거나 뺌 없이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늘 고심 거리다. 겹겹이 화장(化粧)하여 주름을 가리려 애쓰지 않는다. 언젠가는 제 빛깔과 향기를 지닌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길 소망하면서 양심 일기(良心日記)를 쓰듯 쓰려고 노력한다.      


그럼 에도 때때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가 아니라 ‘내가 이 정도 되는 사람이요’라고 뽐내고 싶은 허영과 치기가 불쑥 튀어 오른다. 가끔은 드러내고 싶은 것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고, 감추고 싶은 것들은 깊이 묻어 버리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애초부터 쓴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낼 생각도, 다른 기회를 위한 방편으로 삼을 뜻도 없었지만, 민낯보다는 화장을 좀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속삭임에 솔깃해지고는 한다. 그래서 쓸수록 쉬워져야 할 글쓰기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것을 절감하고는 한다.     


오늘까지 구독자 24명, 전체 조회 수 2000여 회.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숫자이겠지만, 내게는 빈자(貧者)의 만찬처럼 놀라운 숫자다. 그중에는 지인들도 몇이 있지만, 대부분은 나와 인연이 없는 이들이다. 그럼 에도 이만큼이나 많은 분이 눈길을 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족함을 흉보지 않고, 치기(稚氣)와 깊지 않음을 나무라지 않고 말없이 지켜봐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금방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쓸 것 같았던 처음 시작할 때의 들뜬 열정과는 또 다른 열정이 자라고 있다. 신변잡기나 얕은 감상을 나열한 일기(日記)를 넘어 곪은 상처를 터트리는 가시 같은 글,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글을 다만 몇 편이라도 써보고 싶다. 한 번만 들어도 오래 기억되는 노래처럼 여운이 길게 남을 글도 몇 편쯤은 남기고 싶다.


브런치와 함께 한 100일, 내 안의 부정적 에너지가 긍정의 에너지로 바뀌는 시간이었다. 퇴직 후의 상실감이나 자괴감도, 앞날에 대한 막연하고 막막한 걱정도 착한 아들의 사춘기처럼 순하게 지나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거울 속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고, 깊이 보기 시작하였다. 애쓰지 않아도 내 주변의 작은 것들이 제 모습 그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민낯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세상이 더 밝아지고 따뜻해졌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읽어주는 모든 이에게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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