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꿈꾸며 맨발 걷기 2
- 3개월간의 맨발 걷기 실천과 소감 -
‘기적을 꿈꾸며 맨발 걷기’, 같은 제목으로 쓰는 두 번째 글이다. 첫 번째 글을 쓴 것이 5월 중순쯤이었으니 어느새 석 달이 지났다. 내게만 유독 모진 것처럼 느껴졌던 코로나 후유증과 소소하지만 불편한 몇몇 증상들을 맨발 걷기로 이겨내겠다며 출사표를 쓰듯 쓴 첫 글에는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와 치유에 대한 간절함을 가득 채웠었다.
100여 일이 지나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돌아보며 점수를 매겨본다. 중간에 화상으로 빠진 2주 말고도 이틀을 더 빼먹었으니 개근은 못 했지만, 열심이었고 진심이었다. 걸음이 쌓이는 만큼 처음 시작할 때의 기대와 소망대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노력에도, 성과에도 100점씩을 줘도 과하지 않은 것 같다.
맨발 걷기의 효과는 다양한데, 크게 보면 세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먼저, 걸을 때 인체의 축소판인 발바닥이 자극되면서 각종 질환이 치유 또는 호전되는 지압 효과, 땅속 자유전자(음전하)가 우리 몸으로 들어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등 생리적 작용들을 최적화하는 접지 효과(earthing), 그리고 발 아치와 발가락 기능의 활성화(정상화)에 따른 근골격 질환 치유 효과가 그것이다. 거기에 걷는 사람의 의지와 자연 자체의 에너지 등이 더해져 강력한 치유 효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사람마다 느끼는 효과는 질환의 종류, 증상의 깊고 얕음, 체질 등과 함께 무엇보다 노력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다만, 그동안 내가 만나본 맨발 걷기 실천자들의 경우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크든 작든 치유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맨발 걷기는 ‘100% 꽝 없는 복권’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맨발로 걸으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무좀이 없어진 것이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괴로운 것이 무좀이다. 군 복무 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무좀이 불과 한 달여 만에 말끔히 사라졌다. 올여름 유난히 잦은 비에 늘 젖은 땅을 걷다시피 했는데도 말끔해진 것을 보면 신기하다.
발과 관련해 또 하나 확연히 바뀐 것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던 발가락 사이가 갈퀴 살처럼 벌어진 점이다. 오랫동안 볼 좁은 구두를 신는 등등의 이유로 서로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던 발가락들이 매일 흙바닥을 밟으면서 통통하게 굵어진 데다 갈퀴 살처럼 적당히 벌어졌고, 평발과 별반 차이가 없던 아치도 확연히 살아났다.
발가락과 아치가 살아나면서 몇 년째 나를 괴롭혀온 왼발 발 허리뼈(중족골)와 첫마디 뼈(기절골) 사이 관절 통증도 불편을 느끼지 못할 만큼 호전되었다. 마치 기울어가던 탑(塔)의 기단을 반듯하고 단단하게 바로 세우듯, 몸이 더 바르고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숙면과 함께 피곤함이 덜해진 것도 큰 효과다. 두 가지 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경험하는 효과다. 숙면은 대부분 2, 3일이면 효과를 체험한다. 나 역시 맨발 걷기를 시작한 이래 사정상 잠을 덜 잔 날은 있어도 잠이 안 와 못 잔 날은 없었다. 또한, 몹시 지쳐있을 때 한두 시간 숲길을 맨발로 걷는 것만으로도 단비를 맞은 풀처럼 푸릇푸릇 생기가 살아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또 다른 변화는 군살이 빠지고 얼굴이 맑아진 것이다. 평소 정상범위의 몸무게를 유지해온 데다 운동을 해도 체중 변화가 적은 편인데, 석 달 동안 무엇이 빠져나갔는지 2kg이 줄었다. 덕분에 30여 년 전의 몸꼴을 되찾았다. 한편, 얼굴과 혈색 좋아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수시로 마주치는 이들도 이구동성 같은 말을 하는 걸 보면 인사치레 말은 아닌 것 같다.
가장 귀하게 생각되는 변화 중 하나가 마음의 평온이다. 맨발로 숲길을 걸을라치면 첫발이 땅에 닿는 순간부터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던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진다. 실타래처럼 엉킨 머릿속도 아침 숲 속처럼 고요하고 가지런해진다. 맨발 걷기는 경주가 아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신중해야 한다. 천천히 걷고, 조용하게 걷고, 온화하게 걷는 걸음이다. 내 안을 바라보기에 좋고, 비우기에 좋은 느린 걸음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맑아지고, 넓어지고, 따뜻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맨발 걷기가 기적의 비법이거나 만병통치약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더러 극적인 치유와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걷는 숲길에서도 맨발 걷기를 통해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1년간을 주 6회씩 숲길을 맨발로 걸었다는 칠십 어르신, 그 1년 만에 수십 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고혈압과 당뇨, 비만과 요통이 사라지고 전립선염도 근치가 되었단다. 맨발 걷기의 열혈 전도사가 되셨다.
눈뜨면 맨발 걷기가 하고 싶어서 새벽같이 숲으로 달려온다는 80이 다 돼가는 할머니는 맨발 걷기를 시작하며 20년간 해온 등산을 끊으셨다. 피곤함이 사라지고, 발이 따뜻해지고, 숙면으로 삶이 바뀌었단다. 벌써부터 맨발 걷기가 쉽지 않은 겨울이 걱정이시다.
비만에 무릎 통증으로 걷는 것조차 어려워 수영장을 알아보던 남 씨 할머니는 친구들의 권유에 맨발로 아장걸음을 걷기 시작한 지 한주 만에 2시간을 걷고도 아픈 내색을 안 할 정도로 바뀌셨다.
그동안의 나의 체험과 사람들의 치유 사례를 접하면서 맨발 걷기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깊어간다. 다만 내가 체험하고 본 것들이 수많은 병증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만큼 만병통치나 기적 운운은 섣부른 것 같다.
아직은 맨발 걷기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별반 없는 데다, 치유 사례 역시 소위 ‘의학적 검증’을 받은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겪고 본 것들로 미루어볼 때 숲길은 어떤 병원보다 훌륭한 치유의 장이고, 맨발 걷기는 어떤 명의보다 뛰어난 의사라는 확신이 커간다.
동네 숲길에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놀라울 만큼 늘어났다. 5월, 그때만 해도 한 주를 통틀어도 한두 명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을 하늘에 고추잠자리 모여들 듯 소리 없이 늘어 동시에 수십 명을 만날 때도 있다.
부부가, 일가족이 맨발로 걷는 풍경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햇살 부서져 바람에 살랑이는 숲 속 길을 천천히 맨발로 걷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맨발 걷기가 이제는 더 이상 기인(奇人)의 기행(奇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통의 운동쯤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아 반갑다.
그동안 맨발로 걸으면서 체험하고 본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동네 맨발 걷기 동호회 밴드를 만들었다. 맨발 걷기를 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지랖이다. 숫기 많지 않은 내가 맨발 걷기를 하면서 얻은 제일 큰 변화이고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