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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ug 27. 2022

통발 놓는다고 고기 잡히는 것은 아니지

통발만 놓으면 물고기는 응당 잡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통발 속에 들어와 있는 녀석들을 꺼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녀석들은 절대 쉬 잡히지 않는다. 제 나름대로 간을 보고, 망설이고, 확인한다. 그런 연후에야 통발 속으로 들어간다. 더러는 걸려들었다가 용케 빠져나가기도 한다. 통발에 대한 경계심을 풀 때까지 시간도 필요하다. 통발 놓는다고 쉬 고기 잡히는 것은 아니다.    

   

숲길을 맨발로 걷다가 몇 번 마주친 인연으로 통성명하고 지내게 된 황 선생님의 권유로 지난 7월 말 모 포털에 맨발 걷기 밴드를 개설하였다. 그날 바로 황 선생님이 1번으로 회원 가입을 한 데 이어, 이튿날에는 황 선생님의 초대를 받은 10여 명이 잇따라 들어왔다. 워낙 발이 넓은 데다 동네 사정에도 밝고 추진력도 좋은 황 선생님 덕분에 밴드가 금세 구색이 갖춰졌다. 곧 숲길이 맨발로 걷는 사람들로 그득해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황 선생님이 지인들을 초대하고, 숲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홍보하여 회원들을 모집할 때 명색이 밴드 장인 나는 ‘통발을 놓았으니 기다리면 잡히겠지’ 하고는 별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동백에 꽤 오래 살았지만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데다, 불과 이삼일 사이에 회원이 10명 넘게 불어나는 등 밴드로서의 구색이 갖춰진 만큼  굳이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말 부담 주지 말고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나 받아들여 꾸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가면 금방이라도 밴드와 숲길이 맨발 걷기 회원들로 북적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토요일 아침 숲길 들머리 정자에서 첫 정기모임을 갖겠다’는 제1호 공지글을 올렸다.     


마침내 토요일 아침, 그 새에도 몇 사람이 추가로 가입하여 회원 수가 20여 명에 이르렀기에 적어도 대여섯 명은 나오겠거니 기대를 하면서 일찍 약속 장소로 나갔다. 명색 밴드장으로서 인사말은 뭐라고 할지, 첫 맨발 걷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끝나고 나서 간단한 뒤풀이라도 해야 할지 말지 등등을 생각하면서 회원들을 기다렸다.

      

약속한 8시에 황 선생님이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곧 다른 회원들도 오겠거니 하면서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20여 회원 중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회원들을 유치한 황 선생님도 겸연쩍고 실망스러운지 숲 들머리 쪽만 연신 바라보았다. 열없이 몇 분(分) 더 서성이다가 기약 없는 희망을 거두고 밴드 결성 이전부터 함께 걸으며 친해진 ‘숲 속 맨발 4인방 할머니’들과 함께 한 시간쯤 숲길을 걷는 것으로 첫 정기모임을 마무리하였다.

     

그 후에도 내 지인 몇과 황 선생님의 권유를 받은 몇 명 등이 새로 밴드에 가입하여 회원은 30여 명으로 늘어났고, 나는 나 대로 황 선생님은 황 선생님대로 일기나 실습일지를 쓰듯 그날그날의 맨발 걷기 소감이며 관련 자료를 부지런히 올리는 등 회원들은 물론이고 미래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굳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밴드까지 만들어 회원을 모집하는 것은 나나 황 선생님이나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가한 사람들의 오지랖이라고 한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둘 다 몇 달간 맨발로 걸으면서 느낀 몸과 마음의 변화를 더 많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순수한 바람, 단지 그것 때문이다.  

    

계기야 어찌 됐든 간에 두 번째 토요일, ‘회원도 많이 늘었으니 설마 이번에는 몇 명쯤 나오겠지’ 기대를 하고 기다렸지만, 이번에도 역시 황 선생님과 둘이서 걸으며 애써 실망을 감춰야 했다. 세 번째 토요일 역시  상황이 변한 것은 없었다.    

  

참석을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마음이 동하고 필요성을 느끼면 말 안 해도 저절로 동참하겠거니 생각은 하면서도 낙담도 되고 아쉬움도 남았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숲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제법 사람들의 눈에 띈 영향인지 근래 들어 숲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고, 나와 황 선생님이 올린 밴드 글을 ‘눈팅’으로나마 읽어주는 회원도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회원들과의 랑데부에 잇달아 실패한 나와 황 선생님을 필두로 두어 달 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발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 ‘맨발 할머니 4인방’과 개별적으로 맨발 걷기에 진심인 몇몇 등 맨발에 꽂힌 10여 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함께 맨발 행진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참고로, ‘숲길 맨발 할머니 4인방’이야말로 내게는 진성 회원이다. 네 분 모두 맨발 걷기 경력이라야 길어야 2개월, 짧은 분은 2주 정도에 불과하지만 ‘왜 이 좋은 것을 이제 알았는지 후회가 된다’며 매일 2시간씩 걷고 있는 열성 할머니들이다. 내 권유로 맨발 걷기를 시작한 분도 있는 데다, 자주 함께 걸어드리며 자식들 손주들 걱정도 들어주고 걷기 방법 등을 가르쳐드리면서 친해지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침 시간 숲길의 마스코트이자 맨발 걷기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계신다.     


회원 가입을 해 놓고도 3주가 되도록 참여자 한 명 없는 것도, 게시물에 대해 ‘눈팅’이나마 해 주는 이가 많지 않았던 것도 실망스럽긴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내가 가입한 허다한 밴드와 카페에 진심인 적이 -아니 열성인 적이 - 별로 없었으니 다른 이들을 탓할 것도 실망할 일도 아니긴 하다.     


초중고, 대학 동기모임 밴드를 필두로 군대며 각종 관심 분야에 대한 허다한 밴드와 카페 등에 가입만 열심이었을 뿐, 1년에 한 번 들여다보지 않은 것도 적지 않고 댓글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것이 허다하니 역지사지해 보면 밴드에 가입한 것이 곧 적극적인 활동을 약속한 의사표시는 아닌 것이다.


‘이번 토요일에는 다만 두어 명이라도 나와 주었으면......’ 하는 소심해진 바람으로 황 선생님과 둘이서 이른 새벽부터 주거니 받거니 통발 속에 밑밥을 열심히 던지고 있는데 “이번 주에는 몇 시에 어디서 시작하냐”는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아, 드디어 시작인가 보다! 곧 가을 숲길이 맨발족들로 복닥복닥 해 지려나 보다.”    

불쑥 날아오른 고추잠자리 한 마리에서 불현듯 가을이 왔음을 느끼듯, 댓글 하나에서 금세라도 일이 풀릴 것만 같은 희망을 느낀다. 내일 또 낙담할 수도 있겠지만, 통발 놓고 밑밥 뿌렸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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