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추석 차례를 모시고 고향 집으로 향했다. 10여 년 전, 장남인 내가 제사를 모셔온 이래 추석과 설날에는 의례 부모님이 역귀성을 하셔서 차례를 함께 지내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 조치 때문에 상경을 못 하셨고, 이번 추석은 코로나에 감염되었던 어머님이 한 달 넘도록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상경을 포기하셨다. 3년 연속 아들과 단둘이서 차례를 지냈다. 둘이서 차례를 지낼 때마다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어른의 부재가 가져오는 쓸쓸함이었다.
시골집에 들어서면서 대면한 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다른 해 같았으면 광복절 무렵부터 심어놓은 무며 콩들이 한 뼘도 넘게 자라 있을 텐데, 방치한 밭에는 무성한 잡초와 여름내 내린 비에 패인 물골만 어머니 아버지의 주름처럼 깊고 길게 새겨져 있었다. 사막처럼 방치된 밭을 보니 비로소 어머님의 은퇴가 실감이 났다.
6월 말 감자 수확을 끝내고 두 달 가까이 고심하던 어머니는 더는 농사일을 못 하겠다며 손을 드셨다. 81세, 부어오른 무릎으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억척으로 일구던 땅을 인삼밭으로 내어주기로 하셨다. 잘하셨다는 말에도, 이제 좀 편하게 지내시라는 말에도 어머니의 한숨은 깊고 잦았다. 잡초 무성한 밭처럼 황량하고 헛헛해진 어머니의 마음은 한참 동안 어떤 위로로도 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작은 몸으로 참 억척이셨다. 다리는 수십 년째 림프부종으로 퉁퉁 부어있는 데다 어깨도 성치 않아 십여 년 전 수술을 했음에도 일을 쉬는 법이 없으셨다. 그 몸으로 한해 한해 억척스럽게 정년을 연장해 오셨다. 자식 넷을 풍족하게 키우지 못한 것이, 물려줄 것을 쌓아두지 못한 것이 한으로 맺힌 당신께 일은 말 대신 온몸으로 표현하는 미안함이었고,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었다.
하루하루 눈에 띄게 사위어가는 몸으로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한 것들을 철철이 짐칸 가득 실어주시고, 때에 맞춰 보내주셨다. 생각해보면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제 어미의 몸을 파먹고 사는 새끼우렁이나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여태까지도 어머니의 살을 파먹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마침내 은퇴를 선언하셨다. 덩달아 85세의 아버지도 은퇴를 하셨다. 연세를 드실수록 아버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 두 분 다 새끼들에게 몸을 내준 어미 우렁이처럼 껍데기만 남았다. 4남매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준 삶이었다. 어느 자식도 제 살을 떼어내서 어미의 빈 몸을 다시 채워드릴 수 없음을 내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올해 들어 부모님을 뵌 횟수를 헤아려 본다. 한 달에 한 번이 못 된다. 어머니 생신과 퇴직 후 인사차 내려가서 각각 한 번씩, 아버지 병원 진료 때문에 두 번, 그리고 수확해놓은 감자를 실어오느라 다녀온 한 번, 추석 벌초 때와 엊그제 추석에 각각 한 번, 그게 전부다.
떨어져 살면서 그 정도면 자주 뵌 것이라고, 하루 한 번꼴로 전화통화도 하고 있으니 직접 뵙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자위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어도 두 분의 드라마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매일 한 지붕 아래서 얼굴을 부비며 산다 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계실 동안 자주 찾아뵙게. 속 쓰린 말이지만, 몇십 번 뵈면 이별할지도 모르니깐”
5월 초 브런치에 올린『아버지의 뒷모습』이란 글에 친구가 달아둔 두 줄짜리 댓글이다. 얼마 전 부친을 여윈 저의 회한까지 함께 버무렸는지 약 오른 고추보다 더 맵다. “이별할지도 모르니깐.” 가슴을 아리게 하는 촌철(寸鐵), 그 작은 쇳조각이 은퇴를 선언한 두 분의 모습과 맞물려 가슴을 후빈다.
한 달에 한 번씩 뵙는다고 하면 1년이면 열두 번.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 주실 런지....... 100년을 채워 주신다 해도 헤아리기 슬픈 것은 매한가지다.
60이 안 된 나의 은퇴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인생 제2막의 시작이라고 말을 한다. 비록 위로의 말일지라도 나 또한 나의 은퇴가 에필로그가 아닌 제2막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의 은퇴 역시 쓸쓸한 에필로그가 아니라 제2막의 시작이라면 좋겠다. 이제 막 내 것보다 조금 긴 제1막이 끝이 난 것이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명절을 더 함께 보내고, 조금 남겨둔 자투리 텃밭을 함께 가꾸면서 두 분의 인생극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 2막의 사연들이 먼 훗날 아들의 에필로그에 샛별처럼 빛나는 이야기로 실렸으면 좋겠다.
오늘은 흐리고 선선한 것이 일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라 자투리 밭의 땅콩을 캐고, 들깨를 거두셨단다. 저녁밥 짓는 것이 귀찮아 자장라면 두 봉지를 끓이는 중이란다. 그렇게 어머니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